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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를 가득 채운 순간고세이 2023. 8. 11. 10:30
두 사람은, 살아가는 동안 서로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할 것을 맹세합니까? 살아가는 동안, 진심으로. 찰나에 영원의 사랑을 담아, 평생을. 순간과 일생 사이에는 무수히 많은 순간이 있지만 한 순간으로는 결코 일생이 될 수 없고, 일생과 영겁 사이에는 아무리 많은 일생으로 메꾸어도 절대 좁혀지지 않는 영겁이 있다. 한 인간의 영원은 길어봤자 평생이라, 우리는 셀 수 없이 많은 순간에 멈추어 살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한 순간을 다음 순간으로 이어주는 연료는 무엇일까. 인간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매개체는 대체 무엇일까. 혼자만의 순간은 영원에 턱없이 부족하여, 같이 그 긴 세월을 채워나갈 동반자를 만난다. 삶 이전에 필요한, 사람. 사람과 함께 사는, 삶.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무엇이든, 삶의 영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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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의 모습고세이 2023. 8. 10. 23:24
고엔지 슈야가 로맨틱한 사람인지 묻는다면 대부분 아니라는 답이 돌아올 것이다. 그의 평소 행실은 분명 다정했으나 애정을 두른 모습은 아니었고, 어느 쪽인지 구태여 고른다면 무뚝뚝하다는 평이 들어맞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고엔지 슈야는 할 때는 하는 사람이었다. 그것도 아주 분명하게. 아무에게나 로맨티스트로 다가간다면 '진짜' 로맨스가 필요할 때 그 기질을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을 무의식 속 깊은 곳에서 알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진정한 로맨티스트는 의외로 수줍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고엔지 슈야가 수줍은 사람인지 묻는다면 그것도 아니라는 답이 돌아올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당당하게 자신의 신념을 가지고 나아가 행동하는 그의 모습은 수줍음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주 한참 멀었다. 대답을 요구받으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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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는 이길 수 없다고세이 2023. 8. 9. 10:21
고엔지 슈야는 생각보다 당황하는 일이 많았다. 그리고 그 원인은 대개 세이나 히카리였다. 대외적으로는 언제나 냉철하게 자신의 신념을 가지고 행동하는 고엔지 슈야가, 고작 연인에 그렇게나 휘둘리는 모습을 보면 다들 꽤 놀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연인이 눈을 맞춰오면 시선이 묶인 듯, 연인이 손을 잡아 오면 두 손이 묶인 듯, 연인이 발을 맞춰 걸으면 두 발이 묶인 듯 꼼짝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고엔지 슈야는 온몸이 묶인 듯 뻣뻣하게 굳어있었다. “슈야, 나 안 볼 거야?” 그렇게 말하며 내려다보는 세이나 히카리의 목소리에는 짓궂음이 섞여 있지만 고엔지 슈야에게는 너무나도 달콤하여 다시 시선을 위로 돌릴 수밖에 없음을 알기에, 강요는 한 소리도 들어있지 않았다.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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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츠에 먹히다고세이 2023. 8. 8. 21:53
남친 셔츠? 들어는 봤다. 연인의 상의를 걸치는 것만으로도 사랑스러워 견딜 수가 없어진다던가. 고엔지 슈야가 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 또한 연인인 히카리가 덩치보다 한 품이나 더 큰 셔츠를 입은 모습을 본다면 분명 귀엽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세이나 히카리가, 그 행동이 사랑스러운 것이지 해당 사항이 세상의 모든 연인에게 통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고엔지 슈야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아직, 실제로 세이나 히카리의 그런 모습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런 모습이라는 건 “고엔지 슈야의 상의만 걸친 모습” 말이다. 그러나 지금, 그는 인생에서 처음 경험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더운 여름, 귀가가 늦어져 끈적거리는 몸을 이끌고 샤워실로 직행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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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하다 느낄 틈도 없이.고세이 2023. 8. 7. 23:30
네가 주는 사랑과 정에 부족함을 느낀 적은 없어. 넌 항상 나에게 충분한 애정을 쏟아주었고, 나 또한 그것에 언제나 만족하며 그 이상의 것을 너에게 주려 노력했지. 그런데, 내가 너무 욕심쟁이인 걸까?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너를 원해. 깜빡. 눈을 감고 하루가 가면, 마치 어제 내가 받았던 너의 다정함이 리셋되는 듯이 오늘 받을 너의 세심함이 처음부터 다시 기대돼. 그러면 너 또한 마치 어제 너로부터 나온 마음의 양은 모두 잊어버린 듯, 마르지 않는 샘처럼 끝없이 같은 마음으로, 더 많은 양을 나에게 쏟아부어 주어서. 나는 끝을 모르고 계속해서 너를 요구하게 돼. 내가 응석꾸러기가 된 건 다 너 때문이야! 네가 날 자꾸 받아주니까, 내가 원하는 것보다 더 많은 너를 나에게 주니까, 그래서 나는 하염없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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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불변의 선택고세이 2023. 8. 6. 22:56
만약 내가 그때 다른 방법을 선택했더라면, 만약 내가 그때 널 떠나지 않았더라면. 만약 내가 그때, 그 모든 걸 포기하고 너에게로 돌아왔더라면. 그랬다면, 네가 받을 상처를 조금이라도 작게 할 수 있었을까. 그랬다면, 너에게 남을 흉터를 한겹이나마 벗겨낼 수 있었을까. 그랬다면, 나는 너를 얻지 못했을 거야. 다른 모든 것들이 의문인 채 남는다 해도 이것만은 확신을 가지고 단언할 수 있어. 나는 고엔지 슈야이고, 너는 고엔지 슈야를 사랑하니까. 그래서 나는 어떤 것도 포기할 수 없었어. 고엔지 슈야는 자신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온 것들을 모두 지켜야 했고 축구도, 세이나 히카리도 그 안에 깊게 뿌리하고 있는 것들이라. 그는 그 자신이길 포기할 수 없었어. 세이나 히카리의 안에 자리 잡고 있는 고엔지 슈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