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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셔츠에 먹히다
    고세이 2023. 8. 8. 21:53

    남친 셔츠? 들어는 봤다. 연인의 상의를 걸치는 것만으로도 사랑스러워 견딜 수가 없어진다던가. 고엔지 슈야가 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 또한 연인인 히카리가 덩치보다 한 품이나 더 큰 셔츠를 입은 모습을 본다면 분명 귀엽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세이나 히카리가, 그 행동이 사랑스러운 것이지 해당 사항이 세상의 모든 연인에게 통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고엔지 슈야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아직, 실제로 세이나 히카리의 그런 모습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런 모습이라는 건 “고엔지 슈야의 상의만 걸친 모습” 말이다. 그러나 지금, 그는 인생에서 처음 경험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더운 여름, 귀가가 늦어져 끈적거리는 몸을 이끌고 샤워실로 직행했다. 집으로 오자마자 자신을 껴안으려는 히카리에 뒤로 물러나며 땀에 젖을 테니 조금 있다 많이 안아주겠다며 방으로 먼저 들어오고, 입고 나갔던 셔츠는 땀에 젖어 침실 어딘가에 던져두었다. 그리고 샤워를 마친 후 가운을 걸치고 문을 열고 나온 그는 지금, 그 문 앞에서 그대로 굳어버린 채였고, 어리둥절한 얼굴의 연인이 그에게 다가올수록 그는 더욱 당황스러웠다.
    헐렁하게 어깨에 겨우 걸쳐있을 정도로 내려와 돌핀 팬츠를 다 가린, 단추를 잠그는 도중이었는지 두 개 정도가 풀려있었는데 그것만으로도 시선을 바닥으로 내리깔아야 할 것 같은, 사랑스러운 연인이. 하필이면 평소와는 다르게 장난기 한 줌도 찾아볼 수 없는 눈을 똘망하게 뜬 채, 천진난만하게 고개를 갸웃거리며 고엔지 슈야에게 다가올 뿐이었다.
    그 순간 그는, 남친 셔츠의 위력이나 그것에 대해 그가 가졌던 생각, 왜 이런 상황이 된 건지 따위는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머릿속이 하나의 생각으로 가득 찼다. 눈앞의 대상이 사랑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늦은 귀가에도 자신을 안아주지 않은 것에 불만을 느끼던 히카리가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고엔지의 셔츠를 발견하고는 막연한 호기심에 입어보았다는 이유도, 그래서 문을 열고 자신을 보자마자 굳어버린 연인에게 자신이 더 당황했다는 설명도, 고엔지 슈야는 알 턱이 없었다.
    그저, 또다시 땀범벅이 될 것 같다는 하나의 사실만을 머릿속에 집어넣은 채로, 그는 이미 허리를 숙여 입을 맞댄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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