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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짜는 이길 수 없다
    고세이 2023. 8. 9. 10:21

    고엔지 슈야는 생각보다 당황하는 일이 많았다. 그리고 그 원인은 대개 세이나 히카리였다. 대외적으로는 언제나 냉철하게 자신의 신념을 가지고 행동하는 고엔지 슈야가, 고작 연인에 그렇게나 휘둘리는 모습을 보면 다들 꽤 놀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연인이 눈을 맞춰오면 시선이 묶인 듯, 연인이 손을 잡아 오면 두 손이 묶인 듯, 연인이 발을 맞춰 걸으면 두 발이 묶인 듯 꼼짝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고엔지 슈야는 온몸이 묶인 듯 뻣뻣하게 굳어있었다.
    “슈야, 나 안 볼 거야?”
    그렇게 말하며 내려다보는 세이나 히카리의 목소리에는 짓궂음이 섞여 있지만 고엔지 슈야에게는 너무나도 달콤하여 다시 시선을 위로 돌릴 수밖에 없음을 알기에, 강요는 한 소리도 들어있지 않았다. 연인의 목소리, 옷깃을 스치는 소리, 공기의 흐름에 커튼이 잘게 부딪히는 소리. 그런 소리들이 고엔지 슈야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단단히 옭아맨다.
    밝은 빛의 머리카락과 하얀 피부, 맑고 깊은 동시에 새까만 눈동자, 그리고 옅은 홍조. 지금은 누가 봐도 세이나 히카리가 늑대였다. 고엔지 슈야는 그 아래 깔린 먹잇감에 불과했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넌 양이잖아……

    그런 생각이 다 무슨 소용인가. 고엔지 슈야는 양에게 옴짝달싹할 수 없는 늑대에 불과했다. 바짝 세운 털 갈기는 눕혀짐과 동시에 빳빳하게 옆으로 퍼졌고, 그 위를 풀밭 삼아 고개를 숙여오는 한 마리의 순한 양을 본 순간, 고엔지 슈야는 늑대에 불과했다.
    늑대는 잔뜩 곤두서있던 털을 흐트러뜨려 양을 잡아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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