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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숟가락
    고세이 2024. 10. 29. 00:02

     “, 얘들아!”

     시야 끝에서 손을 흔들며 점점 가까워져 오는 두 인영에 걸음을 멈추고 어색하게 거리가 좁혀지길 기다린다. 모르는 얼굴들은 아니었으나, 마주친다 해도 말없이 지나갔으면 하는 사람들. 아마 오늘도 저 혼자였다면 분명 못 들은 척 옆 골목으로 방향을 틀었을 것이다. 성태검과는 그래도 나름 오랜 기간 매일 같이 얼굴을 본 사이고 그동안 마주하기에 익숙해지기라도 했지만, 눈앞의 이 두 사람은 조금 달랐으니까. 아무리 홀리로드가 끝나고, 피프스섹터가 해체되고, 성제도 더 이상 없다지만 일어났던 사실이 없었던 일이 되는 건 아니었다. 단재영은 거대한 흐름에 휩쓸린 한 명의 중학생이었을 뿐이었고, 그 흐름을 만들어 저를 휘말리게 한 사람. 그는 어린 시절 동경을 품었던 축구선수 염성화와는 별개로 지금은 그저 어딘가 편안해 보이는-적어도 저에게는 무책임한-염성화라는 한 사람일 뿐이었다.

     그런 단재영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모르지 않을까. 알아도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았겠지만-, 성태검은 그 동경이 그대로 느껴질 만큼의 곧은 눈을 하고 다가오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지금에야 드는 생각이지만, 염성화 선수 곁에 저런 사람이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그러니까 저런사람이라 함은. 활달하고, 자주 웃고, 장난을 잘 치고. 미디어에서 흔히들 말하는 비글 여자 친구금샛별 말이다. 유유상종이라는 말 때문인지, 단재영 곁에 금샛별과 같은 타입의 사람은 드물었다. 그러나 익숙하지 않은 그런 사람이 불편한가, 하면. ‘전 성제보다는 아니지, 하는 그런 정도. 어쨌건, 지금 이 자리에서 그런 감상을 온몸으로 드러낼 생각은 없다. 드러낸다 한들 후폭풍을 감당할 자신이 없기도 하고.

     가볍게 고개를 꾸벅이며 인사를 하면 다음에 또 보자고, 그렇게 지나갈 줄 알았는데.

     “집에 가는 거야? 오랜만에 얼굴 보는데, 같이 카페라도 가자! 맛있는 거 사줄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 카페의 케이크 진열장 앞에 서 있었다.

     “난 과일파르페! 성화는 카페라테지? 태검이랑 재영이는 뭐 먹을래?”

     “저도 카페라테로...”

     “그러면 저도......”

     “어어? 너희 이 파르페 안 먹을래? 여기 과일파르페가 진짜 진짜 맛있는데! 안 먹으면 후회할 거야!”

     마치 파르페를 강매당하는 것 같은 기분-계산은 염성화 선수가 할 테니 강매는 아니겠지만-과 카페라테가 둘이니 파르페 개수도 둘로 맞춰야 할 것 같은 무언가의 압박-당연하지만 아무도 압박하지 않았다-을 느끼며 단재영이 입을 열었다.

     “그럼, 과일파르페 하나......”

     “과일 파르페 두 개, 카페라테 두 잔 주세요! 한 잔은 샷 추가 맞지?”

     주문을 마치고 메뉴를 받아 자리에 앉았다. 둘씩 마주 보고 앉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다음 제 눈앞에서 펼쳐진 광경에 단재영은 멍하니 시선을 고정할 수밖에 없었다. 연인 사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렇게 입이 떡 벌어질 만한 장면은 아니지만, 성제-였던 이-의 연인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면...아마 성태검도 저와 비슷한 감상일 것이다. 저보다 자주 보았을 테니 조금은 덜 놀랄지도 모르겠다만.

     금샛별이 숟가락 위에 아이스크림과 작은 딸기 슬라이스를 얹은 채 한 입 먹어보라는 투로 한 톤 높은 목소리를 내며 염성화의 입술 앞에 가져다 대자, 그는 그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자리 잡은 듯 고개를 살짝 돌리고 입을 벌려 받아먹는다. 맛있다는 뜻을 담아 눈을 마주치고 미소를 지으면, 그의 연인은 그 미소가 만족스러운 듯 활짝 웃는 것으로 답한 후 제 몫의 파르페를 야무지게 떠먹는다. 드라마에서 흔히 보는 ~’, 입가에 묻은 크림을 닦아주는 상황도 아무것도 없었다만. 아무것도 없는 그 상황을 염성화 선수가 당연히 받아들이는 이 상황자체를, 단재영의 뇌는 처리할 정보가 많은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런 그의 낌새를 이제야 눈치라도 챈 것인지 염성화 선수는 입가를 가리고는 작게 헛기침을 내뱉었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것을 바라보던 금샛별은 이쪽으로 시선을 돌리더니 무엇이 그렇게 재미있는지 혼자 키득거렸다.

     “재영이도 얼른 먹어봐, 이거 엄청 맛있어!”

     딱히 먹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저를 의식하는 어른 둘을 앞에 두고 편하게 디저트를 먹기란 단재영의 입장에서는 어려운 일이었기에, 성태검에게 눈짓을 보내 이 상황을 무마하고자 했다.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성태검 또한 저를 흘끔 보고 말 뿐이었지만.

     “...너도 먹을래?”

     갑갑함을 내리누르며 숟가락을 건네자, 의외라고 생각했는지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것도 잠시, 내민 것을 말없이 받아 가더니 크림을 한 입 떠먹고는 무미건조한 감상을 한 마디 내뱉으며 도로 단재영의 앞으로 돌려놓는다.

     “맛있네.”

     “크림밖에 안 먹어놓고?”

     맛과 관계없이 적당히 대꾸하고 흘려넘겼다는 점을 정석적으로 지적하자, 보기 드물게 어떻게 답해야 할지 고민하는 얼굴이다. 염성화 선수 앞이라 그런가? 처음부터 한 숟갈 가득 아이스크림을 먹을거라 생각한 건 아니었지만, 저 이외의 목소리로는 채워지지 않는 이 공백을 메꾸어야 할 것 같았다.

     “더 먹어봐.”

     미묘하게 꿈틀거리며 올라간 눈썹이 내려갈 생각도 않고, 그러나 동시에 마음에 들지 않는 정도까지는 아닌 듯 순순히 다시 스푼을 가져가 설탕에 절인 체리까지 하나 얹어 아이스크림을 입에 넣는다.

     “맛있어. 진짜로.”

     “그러면 다행이고.”

     그제야 단재영은 오렌지가 얹어진 제 몫의 과일 파르페를 마음 편히 떠먹을 수 있었다. 달큰한 맛이 감도는 과일 조각들과 상큼한 아이스크림의 맛이 적당히 어우러져 시원하게 입속에서 퍼졌다. 그리고 왜인지 흐뭇하게 앞의 두 중학생을 바라보는 금샛별의 시선이 느껴졌다. 사이좋은 친구...같은 걸로 여기는 거겠지. 구태여 아니라 말을 꺼내기에는 설명해야 하는 사연이 구질구질하게 느껴져 그냥 가만히 있기로 했다.

     “어때, 너무 맛있지 않아? 난 여름이면 여기 올 때마다 이걸 먹거든. 시즌 메뉴라 올해도 이제 오늘이 마지막이 될 것 같지만...가을에는 또 달콤한 몽블랑이 나오니까 괜찮아! 이 카페, 몽블랑도 얼마나 맛있는데! 다음에 다시 오면 너희들도 꼭 사줄게, 알았지?”

     다음에, 다시......

     다음에도 다시 이렇게 넷이 이곳에 와서 이렇게 둘씩 마주 보고 앉아 디저트를 먹어야 한다는 뜻인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눈앞의 과일파르페를 떠먹는 것에 집중했다. 그래, 나쁘지 않지. 학생 신분으로 이런 메뉴를 매번 사 먹는 건 부담되니까. 솔직히 또 생각날 정도로 맛있기도 하고. 숟가락이 파르페 컵과 제 입안을 부지런히 오가는 동안 단재영은 그저 디저트가 맛있다고 생각했다. 어른이 사주는, 달콤한 시간 속에서. 피프스섹터건 시드건, 다들 이 파르페를 먹었다면 그런 침울한 생각 따위 싹 사라졌을 거라고. 한 숟갈씩 나눠 먹고, 다음에 또 먹자며 집으로 돌아갔을 거라고.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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