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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吸孑貴
    고세이 2024. 8. 1. 14:23

    주의사항: 본 글에서 ‘그’라는 인칭대명사는 성별 구분 없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이길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 짓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무더운 여름 불어오는 바람이 뜨거운 공기인지, 해가 뜨거워 바람조차 그렇게 느껴지는 것인지를 구별하는 일처럼 애매하고 또 속이 답답한 정답일 것이다. 인간이 될 수 없어 고작 그 무리 속에 섞이는 길밖에 택할 수 없었던 괴물이 있었다. 그러나 인간이 아니었기에 먹는 것이 달랐고, 수명이 달랐으며 그리하여 결국엔 떠돌아다니는 신세가 될 수밖에 없었던 괴물이 있었다.

    피를 마신다고 하여 흡혈귀라 불렸다. 鬼. 인간의 탈을 쓰고 피를 먹이로 삼는 것은 결코 인간이라 할 수 없었다. 그것이 어떠한 연유로 무리에서 이탈한 한 인간과 만나 사람이 되었는지는 당사자들만이 알 일이다.

     

     

     

    내가 그 숲에서 혼자 살고 있었던 이유 말이야? 너도 참,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런 걸 묻다니 짓궂어. 그래도 말해줄게. 난 네가 마음에 들었거든.

    나, 보다시피 하얗잖아? 피부는 그렇다 치더라도, 머리카락 색까지 이래서 희멀건한 느낌이 강해. 그러다 보니 흡혈귀로 오해받는 일이 많이 생기더라고. 물론 아니라고 했지! 그래도 사람들은 불안한가 봐. 어릴 때부터 수군거림을 들으며 자랐어. 친구도 한 명 없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부모님의 울타리도 한계가 있었지. 그래서 내가 나왔어. 한 2년 됐나? 나 때문에 마을이 소란스러운 게 싫기도 했고, 더 이상 엄마랑 아빠 걱정시키기 미안하기도 했고.

    아, 그런 표정 금지! 네가 왜 미안해? 궁금해서 물어본 것뿐이잖아. 내가 선택한 일이고 숲속 생활에도 나름대로 만족하고 있으니까 난 정말 괜찮아. 그리고 말했잖아? 나, 네가 마음에 들었다고. 첫 친구한테 비밀 같은 건 없었으면 좋겠는걸. 그리고, 난 이미 네 비밀을 하나 알아버렸잖아. 그것도 엄청 중요한 비밀을.

     

    집 문을 열고나온지 얼마 되지도 않아 나온 쪽으로 다시 걸음을 옮겨야 했다. 자신보다 한참은 더 큰 남자를 낑낑대며 부축해 데려오는 그는 안 그래도 더운 날씨 탓에 몇 걸음 가지도 못하고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나갈 때의 시간에 비해 들어올 때가 두 배는 더 걸린 것 같았지만 숲길에 쓰러져있는 사람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더운 날씨에도 온몸을 감싼 망토와 그마저도 드러날 수밖에 없는 손에 낀 장갑. 모자 아래로 드러난 얼굴은 태양 빛에 말라버린 듯 버석했다. 혹시 함정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만약 그랬다 할지라도 세이나 히카리라는 이에게는 어쩔 수 없었으리. 그는 망설임 없이 품 안의 작은 칼을 꺼내 손바닥을 그었다. 따끔. 쓰라린 아픔이 길게 이어졌지만, 눈가를 찡그리는 것에 그쳤다. 지금은 살릴 수 있는 눈앞의 생명이 더 소중했다.

    낯선 이가 느릿하게 눈꺼풀을 들어 올릴 때까지 자신의 생명을 주었다. 눈을 뜬 것을 확인하면 바로 도망쳐야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몸은 그를 일으키고 있었고, 완전히 회복만 되면 집에서 내보내자,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여태껏 그와 수다를 떨고 있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었다. 다행히 그 흡혈귀는 은혜도 모르고 생명의 은인에게 달려들거나 감사 인사도 없이 그의 곁을 떠난다거나 하는 짓은 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따금 작은 웃음을 흘리며 맞장구를 칠 뿐이었다 - 그러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생명의 은인의 첫 친구가 되어버리고 말았지만.

    고엔지 슈야라는 이름을 쓴다고 하였다. 정착할 마을을 찾는 도중 숲에서 불을 피워 지샜던 밤, 타오르는 모닥불을 보고 아무렇게나 갖다 붙인 이름을 듣고 세이나 히카리는 멋진 이름이라며 자기가 더 좋아하였다. 몸이 완전히 회복되면 자기가 살던 마을로 가서 지내라는 둥, 그동안 내가 널 도와주겠다는 둥. 착하다 못해 바보 같은 사람이라 생각했다. 어떻게 자신을 쫓아낸 마을을 ‘좋은 마을’이라 할 수 있지? 어떻게 생판 남에게, 그것도 인간이 아닌 자신에게 피를 내어주면서까지 도와줄 수 있지? 고엔지 슈야는 생소한 감정을 느꼈다. 이름을 짓던 그날 밤, 홀로 지새우던 그 밤에 자신의 이름이 되어준 모닥불을 보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세이나 히카리를 볼 때마다, 그가 그 이름을 불러줄 때마다 ‘고엔지 슈야’가 되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슈야, 이것 봐. 꽃이 너무 예쁘지 않아?”

    “슈야, 이리 와 앉아. 바람이 시원해.”

    “슈야! 아직 그렇게 햇빛에 돌아다니면 안 된다니까!”

    누구도 부른 적 없는 이름이, 슈야가 되었다. 마을로 내려가 다시 고엔지가 되어도 숲으로 돌아오기만 하면 둘도 없는 고엔지 슈야가 되었다. 그는 일주일에 두 번은 꼭 피를 받아마실 겸 숲속 집으로 향해 세이나 히카리에게 마을 사정을 들려주곤 하였는데 – 사실 그가 흡혈하는 것은 한 달에 한 번으로, 그저 얼굴을 보러 가는 핑계에 불과했다 - 매일 똑같아 보이는 일상을 매번 그리 뛰어나지 않은 말주변으로 전해도 그는 항상 얼굴에 미소를 띠며 흥미롭게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그의 표정이 일그러지게 만든 사건을 발단으로, 마을 사람들이 알 수 없는 원인으로 인해 하나둘씩 죽어갔다. 사람뿐만 아니라 가축까지 그러했다. 공통점은 사체에 남아있는 붉은 반점뿐. 무더운 날씨에 전염병이 창궐했다는 것을 알 리가 없는 시골 마을이었다. 아니, 태양에 작물조차 말라, 먹을 것이 부족한 와중에 잘못 걸려들 사냥감이 필요했을 뿐일지도 모른다. 재난과 같은 역병 앞에서 무력한 사람들의 시선은 숲속에서 홀로 지내던 소녀로 향했다.

    흡혈귀의 짓일 거야.

    몇 년 동안 얌전하다 했더니 기어이 일을 벌이는군.

    그 녀석을 처단하면 신께서 이 마을을 돌보아 주실 거야.

    마을 내에서 이것이 병이라는 것을 알아챈 이는 단 한 명뿐이었다. 흡혈귀 고엔지 슈야, 그 자신이 그러지 않았다는 것이 확실했고, 또 숲속의 소녀는 마을의 희생을 막기 위해 자신에게 주기적으로 피를 제공하고 있었으니까. 그가 불안한 이유는 온전히 소녀의 안위를 걱정한 것만이 아니었다. 숲으로 들어가는 길목마다, 그의 발걸음에 작은 혼란이 피어났다.

    ‘혹시 네가 나를 의심하고 있으면’

    ‘혹시 네가 사실을 밝힌다면’

    ‘혹시 네가, 나를 넘긴다 해도’

     

    나는 무엇을 망설이고 있는 거지?

    똑똑. 아, 오늘도 늦었다. 이미 문을 두드려 버렸다. 떠난다는 말도, 떠나라는 말도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았는데, 문을 열러 나오는 너의 발걸음 소리에 오늘도 들떠버렸다. 그래서, 아무것도 들을 수 없었나 보다. 나를 뒤따라오는 수많은 발소리도, 횃불이 풀더미에 스치는 소리도. 웃는 얼굴로 나를 맞아주며 문을 열고 나와 그대로 굳어버린 너를 보고서야, 그제야 우리를 둘러싼 모든 소리가 귓가를 두드렸다.

     

    자네는 흡혈귀에 홀린 거야!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네.

    당장 거기서 비키게. 그렇지 않으면-!

    은색 탄환을 장전하는 소리. 그리 넓지 않은 풀밭을 밟으며 다가오는 소리. 점점 고양되는 분위기에도 아무것도 결심하지 못한 채 누군가의 마음만이 이글거리는 소리.

    그 중 한 사람이 바닥을 향했던 총구를 들어 올리고 둘 중 누군지 모를 어떤 이를 향해 조준했다. 누구를 위한 총알이었는지는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알 수가 없다. 진정으로, 사냥감만을 위한 탄이었기에 누구이든지 상관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단지 그때 들렸던 소리는, 급히 달려오느라 삐걱거리는 나무 바닥 소리. 끔찍한 소리였다. 쏘았던 이는 정적 뒤 환호를, 맞은 이는 소리 없는 신음을, 지켜본 이는 불길이 타들어 가는 소리를 들었다. 일렁일렁. 걷잡을 수 없이 커질 불이 일었다. 불이, 일었다.

    “...아쉽, 다”

    아쉽다고? 이해할 수 없는 말에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알았다. 아쉽다. 아쉬워야 했다. 사냥꾼은 그의 말을 흡혈귀의 탄식으로 들었고, 사냥감은 그들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면서까지 고엔지 슈야를 사람으로 있게 하기 위한 아쉬움을 뱉었다.

     

    鬼는 내가 데려갈게. 너는 고엔지 슈야로 살아줘.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나의 첫 친구를, 네가 지켜 줘.

     

    괴물로 죽어간 인간은 하늘로 오르는 연기가 되어 사라지고, 인간으로 살아가는 괴물은 여전히 땅에 남아 타닥거리며 거센 생명의 불을 지폈다.

    흡혈귀를 죽인, 경사스러운 날이었다. 역겨운 괴물도, 무서운 역병도 사라졌으니, 마을로 돌아가면 축제를 벌이자며 벌써 돌아가는 길이 소란스러운, 구슬픈 날이었다.

     

     

    너와 내가 함께 만든, 이제는 나만의 것이 된 이야기.

    세이나 히카리가 인간이었다는 것도, 고엔지 슈야가 마을을 다시 떠날 때까지 전염병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도. 내가 너를 좋아했다는 것도.

    이제는 너만이 알고 있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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