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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리고, 우리.
    고세이 2024. 8. 1. 14:14

    나지막이 새벽을 깨우는 알람 소리. 아직 해도 뜨지 않아 어둑어둑한 시각. 알람에 눈을 뜬 고엔지 슈야는 제 옆에서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는 사랑스러운 연인의 이마에 입을 맞추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히카리, 일어나. 낮게 잠긴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을 것이 분명한데, 모른 척 꿈지럭거리며 이불 속으로 더 파고 들어가는 건 이미 예상한 바다. 조금만 더...... 여느 때 같았으면 그 달콤한 시간을 함께 나누었을 것을, 그러지 못하는 아쉬움만 맛본 채 히카리를 깨워야 하는 그였다. 안 돼, 일어나야 해. 여전히 이불 속에 푹 파묻혀 웅얼거리는 목소리. 왜......

    “오늘은 우리 결혼식 날이잖아.”

    “......”

    “좋은 아침, 히카리.”

    그 말을 끝으로 용수철처럼 튀어 오른 히카리가 주위를 한 번 두리번, 그리고 미소를 머금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고엔지 슈야의 눈을 빤히 맞춰오는 것 또한, 예상한 대로다. 좋은 아침. 다시 한번 아침 인사를 건네는 다정한 제 연인에게 달려들 듯 안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오후부터 진행되는 예식을 준비하기 위해 아침 일찍 식장에 도착한 두 사람을 맞이하는 것은 아직은 쌀쌀한 봄바람이었다. 히카리의 바람을 따라 아는 이들 몇몇만 불러 야외에서 작게 치르기로 한 것이긴 하지만 바로 근처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감기라도 들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결국 차에 두고 내린 겉옷을 가지고 오겠다며 고엔지 슈야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식장을 둘러보던 새신부에게 인사를 건네오는 웨딩플래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엔지씨!”

    슈야가 벌써 왔나? 뒤를 돌아보아도 그는 아직 차인 듯한데, 여전히 고엔지를 부르는 그 목소리가 자신을 향해 꽂히는 기분에 세이나 히카리는, 아니 고엔지 히카리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긴장에 가득 차 삑사리 나는 대답을 하고야 말았다.

    “네!?” 아, 나 이제 고엔지 히카리구나......

    “신랑분은 어디 가셨어요?”

    “아, 제가 겉옷을 차에 두고 내려서......”

    플래너는 빙그레 웃음으로 답하더니 히카리를 데리고 신부대기실로 안내했다. 신랑은 다시 자기가 데려오겠으니 그동안 신부가 먼저 하고 있을 일이 있다면서. 하고 있을 일이라는 말에 두 눈이 반짝이더니 작게 키득거리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대기실로 향하는 ‘할 일 있는 새신부’ 되시겠다.

     

    눈앞에 크고 두꺼운 커튼 한 장을 두고 두근대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소파에 앉아있는 고엔지 슈야의 두 볼에 손을 대 본다면 분명 히카리의 입에서는 맑은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을 것이다. 지금은 그를 이렇게 긴장시키고 있는 저 커튼 안의 존재가 제 신부라는 사실이 더더욱 그의 심장을 뛰게 했다. 퍼스트 미트. 예식 시작 직전에 신랑에게만 가장 먼저 보여주고 싶다던 화려한 순백. 새하얀 드레스를 두른 빛나는 사람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큰 시합을 앞두고 경기장으로 입장하기 직전의 감각이 선명하게 일어난다. 초조함이 섞인 그때의 딱 두 배, 아니 세 배 정도로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기를 반복하다, 마침내 그 한 장이 열리는 순간.

    아.

    어떻냐 물어오는 소리도 없이, 쑥스러움을 숨기지도 않고 손가락만 꼼지락거리며 가만히 답을 기다리던 히카리는 한참이 지나 고개를 들어 제 신랑과 눈을 맞추자마자 풋풋한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흑색의 눈동자에서부터 전해져오는 이 떨림이, 그가 느끼는 모든 감정을 말해주고 있었다. 한 발, 한 발.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의 얼굴은 열기를 더해가고, 코가 닿을 거리를 두고 마주하니 뜨거운 그 얼굴을 가리려 한 손으로 눈가를 가린다.

    “나 안 볼 거야?”

    부러 토라진 목소리를 내는 그 모습마저 사랑스러워, 보지 않을 수가 없었던 고엔지 슈야는 제 얼굴을 가리고 있던 커다란 손바닥을 뒤집어 고엔지 히카리의 눈가를 덮고.

    마주 닿는 입술에 그 열기를 담아, 가볍게 눌렀다 떼었다.

     

    식전 촬영과 리허설 등을 끝내고 겨우 찾아온 잠깐의 휴식 시간, 의자에 나란히 앉아 먼저 서로의 피로를 묻는 두 고엔지에게 역시나 나란히 돌아오는 답은 괜찮아. 몸은 피곤하겠지만서도, 오늘은 서로의 존재로 인해 가장 벅차오르는 하루가 될 거니까. 그런 이유를 시선으로 주고받고 또다시 서로의 이마를 맞대며 행복을 만끽하는 그들을, 폭풍처럼 다가오는 결혼식 일정은 가만히 두지 못했다. 곧바로 들려오는 신부대기실 바깥의 웅성거림에 슈야는 나중에 보자며 두 손을 꼭 잡아주고는 아쉬운 듯 발길을 떼지 못하다, 얼른 가보라는 히카리의 재촉에야 문을 나섰다.

    은퇴 후 지방으로 내려가 살고 계신 히카리네 부모님을 위해 고엔지家에서 두 분을 모시고 식장으로 같이 오겠다 했다고 들었다. 고엔지 카츠야, 고엔지 유카, 그리고 세이나家의 양친.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대화를 나누며 다가오는 네 사람에 고엔지 슈야 또한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다들 오셨어요?”

    “우리 사위가 아침부터 고생이 많네. 준비는 잘 되고 있고?”

    “네, 히카리는 안에 있어요. 들어가서 인사 나누세요.”

    “오빠는 이제부터 외로워서 어쩌나. 식 시작할 때까지는 언니 못 볼 텐데.”

    “유카, 네 오빠 놀리지 말거라.”

    “둘은 여전히 사이가 좋아 훈훈합니다. 사돈.”

    “유카가 그렇게 좋아하는 그 언니, 지금쯤 심심하다고 다들 기다리고 있을 거야.”

    다섯이 주고받는 만담 같은 대화는 고엔지 유카가 히카리 언니를 부르며 바쁘게 걸음을 재촉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앞서 주례와 사회를 부탁해 둔 히비키 세이고우와 우츠노미야 토라마루가 각자 도착하고, 그 뒤로는 초대장을 받은 이들이 하나둘 얼굴을 비추며 더욱 바빠지는 신랑이었다.

    “고엔지! 결혼 축하해.”

    “와줘서 고마워. 엔도, 키도.”

    “오는 게 당연해. 다른 누구도 아닌 너희 결혼인걸.”

    “축하드려요, 고엔지 선배!”

    “너희들도 고맙다. 온 김에 잘 놀다 가고.”

    “히카리 언니는요? 안에 있나요?”

    “기다리고 있을 거야. 들어가 봐.”

    아오이와 미도리가 너나 할 것 없이 대기실로 향하고, 아카네는 평소와 같은 웃음을 짓고는 카메라로 이곳저곳을 찍으며 따르는 모습에 라이몬의 몇몇 부원들 또한 걸음을 서둘렀다. 신부대기실은 먼저 와있었던 토코와 리카, 그리고 아키를 비롯한 이나즈마 레전드 재팬의 매니저들이 모여 히카리의 수다 상대가 되어주느라 이미 왁자지껄한 상태였다.

    “다들 바쁠 텐데 와줘서 고마워.”

    “결혼 축하해, 히카리.”

    “언제 하려나, 싶었는데. 드디어 하는구나?”

    “슈야는 항상 그렇게 늦더라!”

    당사자는 듣지 못할 말들을 늘어놓으며 웃음꽃이 피어나는 대화를 배경음으로, 갑자기 귀가 간지러운 듯한 고엔지 슈야는 모른 체 하고.

    “언니, 오늘 정말 예뻐요......”

    “오늘만?”

    “오늘은 특별히 더!”

    새신부의 웨딩드레스 모습에 흠뻑 빠져버린 어린 소녀들과도 어색함 없이 마주하는 화목한 모습도 잠시, 이제 곧 식이 시작되니 준비하라는 연락을 들고 고엔지 슈야가 곁에 자리하자 하객석이 가득 참과 동시에 시끌시끌했던 대기실이 한순간에 고요해지고, 고엔지 히카리의 가슴 속에도 잔잔한 파장이 울리기 시작했다.

    “나 떨려, 슈야. ......많이.”

    슈야는 말없이 히카리와 눈을 맞추고, 손을 건넸다. 언제나 그가 보여주던, 잔잔하지만 가장 다정한 웃음과 함께.

    “...... 이제 괜찮을 것 같아.”

    히카리는 슈야의 손을 마주 잡았다. 단단한 그의 손을, 꼭 마주 잡았다. 닿으면 그러쥐던, 변함없는 온기를 느끼며.

     

    일생에 단 한 번뿐인 결혼식.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이 만나 평생의 서약을 주고받는 자리. 불완전했던 우리는 이제, 온전한 한 사람으로서, 살아가려 해.

    너는 슈야고, 나는 히카리야. 나는 고엔지고, 너도 고엔지야.

    ...... 불안하지 않다고 한다면, 거짓말이겠지. 앞으로 어떤 일이 있을지는 그 누구라도 모르는 거잖아. 그렇지만...... 그 불확실한 미래에, 네가 함께 있을 거라는 사실 하나만큼은 확실하니까. 아무도 알지 못하는 그 미래를, 너와 같이 채워갈거니까. ...... 분명 슈야도, 히카리와 같은 마음이니까.

    우리가 채워갈 미래는, 우리의 빛으로, 찬란하게 타오를 거야.

     

    신랑 신부, 입장!

    축하의 기쁨을 가득 담은 박수 소리가 회장을 가득 채우고, 바닥에 깔린 융단을 밟으며 천천히 나아오는 두 사람. 드레스를 입은 히카리의 속도에 맞추어 한 발 한 발 걸음을 같이하는 슈야의 얼굴에서는 드문드문 비추는 긴장, 그리고 그것을 아득히 뛰어넘는 평안이 엿보였다. 기나긴 겨울을 지나 새봄을 맞을 때, 따스한 햇살 아래 얼었던 모든 것이 녹아 제 모습을 드러내는, 자신의 둥지를 찾아다니다 드디어 도달한 듯한 철새와 같은, 쉼을 얻은 한 사람. 그리고 또 한 사람, 자신에게 발을 맞춰 걸어주는 슈야에게 의지하여 앞으로 나아가는 히카리. 늦은 속도이지만 화려한 조명이 그것을 더욱 오래도록 빛나게 하는, 더욱 오랜 환호성이 그들을 맞이하게 하는, 슈야와 함께 나아갈 용기를 얻은 한 사람.

    함성으로 가득한 이 길이 그들의 앞길이 되기를, 그곳에 있는 모두가 한마음으로 바란 한 가지.

     

    마음을 담은 성혼 선언-히카리가 너무 힘차게 대답하는 바람에 회장이 빵 터졌다고 한다. 슈야는 그것도 히카리다워 그저 좋다며 벌써 신혼의 티를 팍팍 내었다-과 히비키의 축복 가득한 주례사가 끝나고, 라이몬 일레븐의 단체 축가가 이어졌다. 신도의 피아노 연주를 처음 듣는 히카리가 그 소리에 푹 빠져 식이 끝난 후 신도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었는데, 헝클어진 그 머리 덕분에 2, 3학년들 아이들-1학년은 차마 말로 하지 못했지만 속으로 분명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에게 푸들 소리를 들은 이야기는 덤이다.

    예식의 마무리 단계, 사회를 맡은 토라마루는 당사자들만 몰랐던 소박한 이벤트를 진행하였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그가 직접 생각한 것은 아니고, 이런 것에 관심이 많은 하루나에게 추천받아 정했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정석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자 그럼, 마지막으로 신부에게 신랑이 아까운지 아닌지를 봐야겠죠. 신부 안고 앉았다 일어나기!”

    사실, 하루나를 통한 이상 모두가 알고 있었던 지라 놀라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와 별개로 이런 이벤트가 빠져서는 섭섭하다. 경매처럼 횟수를 정하고 달아오르는 분위기에 역시 그간 혹독한 훈련으로 성장해 온 그들이라, 어지간한 정도로는 넘어갈 것 같지 않았지만 온종일 그러고만 있을 수는 없는 지경이기에 고엔지 슈야의 상징인 등번호 10번을 따라 열 번으로 정해졌다.

    하나! ......

    둘! 슈야?

    셋! 이제 와서 쑥스러워하기는.

    넷! 오늘은 우리 결혼식인데?

    다섯! 다들 보고 있는데,

    여섯! 뭐라도 멋진 모습 보여줘야 하지 않겠어?

    일곱! ......

    여덟! 안 해줄 거야?

    아홉! ......

    열! 사랑해.

    내 멋진 모습은 너만 보면 되니까. 소리 높여 외치기보다, 단 한 사람에게만 들리도록.

    “이쯤 되면 한마디 해 줄 법도 한데, 여전히 부끄러움이 많은 고엔지 슈야였습니다!”

    사회자의 재치 있는 발언과 하객들의 웃음소리, 그리고 그 안에 묻혀버린 우리들의 부끄러움. 그래, 그거면 됐어. 묻어버리자, 우리만이 볼 수 있도록.

    귓전에 정말로 종소리가 울려 퍼졌는지, 자주 들어온 말이 하필이면 그 순간에 맞춰 떠오른 건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내 앞의 네가 너무나도 눈이 부셔서, 눈을 감아버린 내 뺨을 감싼 네 손의 온도가 너무나도 따스해서, 너의 그 온도를 입술로도 느끼고 싶어서 달콤하게 입을 맞췄다는 사실만은, 누구에게나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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