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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1일, 빼빼로데이. 누군가는 기업의 상술이라 말하면서도 기꺼이 그 상술이 선사하는 행복에 넘어가는 날. 11이라 적힌 숫자를 떠올렸을 때 아마 대부분의 사람은 이날을 떠올릴 것이다. 뭐, 몇몇 축구 바보는 그보다 먼저 열한 명이 모여서 하는 스포츠가 생각날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아무리 축구 바보라 해도 함께하는 동료들을 위해서라면 그들도 역시 빼빼로라는 것이 머릿속에 아주 작게나마 자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연유로, 오늘 썬더코리아의 합숙소에서는 이른바 빼빼로 이벤트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애쓰는, 그러나 없으면 도저히 썬더코리아가 원활하게 굴러가지 않게 되는 존재. 일곱 명의 동료를 위해 이번엔 저희가 빼빼로를 선물해 주자는 계획을 “몰래” 세운 열일곱 명의 축구 바보들이 모였다. 사실 지금은 빼빼로데이는커녕 11월도 채 되지 않았고, 엄밀하게 따지면 선수로 뛸 수 있는 것은 열여섯 명-주는 쪽이 더 멋있어 보인다는 석진오의 한마디로 안경민을 아주 간단히 설득할 수 있었다-이다. 거기에 가장 가까운 기념일이 빼빼로데이라는 점만을 떠올려 얼렁뚱땅 진행된 계획이었지만-강바람의 입에서는 너무 되는 대로 굴러가는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오긴 했다-, 동료의 기쁨을 바라는 그 마음을 누가 나무랄 수 있을까. 이왕 주기로 한 거, 시판의 것을 그저 사서 건네기만 하는 건 이 열정 넘치는 바보들로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서프라이즈를 결정한 이상 우선은 일곱 명-네 명의 매니저와 두 명의 응원단, 그리고 한 명의 오퍼레이터-을 밖으로 내보낼 필요가 있었다. 오늘은 선수 각자에게 맡기고 놀고 오기라도 하라면서 말을 꺼내는 역은 송현민으로 결정. 말주변이 좋고 평소에도 이 일곱 명을 대하는 것이 자연스러웠-갑자기 말을 걸어도 어색하지 않은 인물이었-기에 별 이견 없이 정해졌다. 주장인 강수호도 후보에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이런 상황을 어떻게 둘러댈지 심히 걱정된다는 이유로 금방 제외되었다. 그 덕에 합숙소를 비우는 것은 간단하게 진행되었고 남은 일은 “재료를 사서, 만든다!” 그뿐이었다.
오로지 축구프론티어 인터내셔널을 위해 이른바 ‘축구아일랜드’로 개조된 라이오코트 섬이었지만, 관광지로도 유명하고 선수들의 생활공간 또한 자국에 맞게 지어진 곳이었기 때문에, 빼빼로 재료를 찾아 구매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 섬이 명성을 얻으면서, 로맨틱한 이벤트에 맞추어 과자 스틱이나 중탕용 초콜릿으로 자기만의 선물을 준비하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났기 때문이겠지. 구매 목록을 작성하는 건 고수리와 팽호식 두 명이 빼빼로의 종류를 나눠 한 팀씩 맡기로 했다. 평소 혼자서도 대인원의 장을 보는 경험이 많은 사람이 아니면 따로 남는 재료만 중구난방으로 남아 처치 곤란이 되거나, 사람 수에 턱없이 모자란 빼빼로 수량이 나오게 될 거라는 게 눈에 보이듯 선했기 때문이다.
두 팀으로 나눈 빼빼로 종류는 크게 오리지널 초콜릿 빼빼로와 딸기 맛 빼빼로. 스틱 개수에 맞춰 중탕용 초콜릿을 사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남는 양이 나올 거라, 그것들로는 초콜릿을 만들어 토핑을 좀 얹는 것으로 대략적인 계획의 틀을 잡았다. 이것도 기념인데, 각자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디자인으로 만드는 것은 어떠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그 말을 한 목소리의 주인이 염성화라는 것을 눈치채자마자 조금은 의외라고 생각했지만, 절친이라는 신귀도가 좋은 생각이라며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는데 이 이상 황당해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실제로 받을 친구들도 매우 기뻐할 것 같았다. 특히나 팀 내 “러브러브”를 담당하는 몇 사람들이-주는 이들은 모르겠지만. 아니, 어쩌면 알 수도 있다.-너무나도 좋아할 것 같았다.
완성된 디자인을 참고로 한 재료들이 적힌 리스트를 가지고 나가서 재료를 사 오는 건 박해일, 장벽구, 모용기. 이른바 “파워 담당과 틈만 나면 입맛을 다시는 동생들을 형으로서 잘 컨트롤할 수 있는 조합”이 되었다. 본격적인 만들기 단계에서는 의외로 요리에 조예를 보이는 부동명과 제국 출신인 탓에 무엇이든 평균 이상을 해낼 수 있는 사마진이 각 팀에 전반적인 지시를 내렸고, 팀원들을 살펴보며 장난의 낌새가 보이면 금방 호통칠 수 있는 성격의 황우레와 곽용호가 그들을 보조했다.
색깔별로, 그리고 모양별로 토핑을 얹어 다 만들고 보니 빼빼로만 봐도 누구에게 갈 빼빼로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을 만큼 개성이 넘치는 모양이었다. 봄처럼 포근한 분홍색 초콜릿을 베이스로 빨강과 남색 등 강렬한 색깔의 작은 꽃들이 얹어진 빼빼로, 같은 딸기 맛 빼빼로 위에 하얀 장식 초콜릿을 둘러 단순하게 보이지만 통하는 순정적 클리셰의 빼빼로도 있는가 하면 진갈색 초콜릿 위에 하얗고 노란 꽃 모양의 토핑을 뿌려 가을의 느낌을 물씬 풍기는 빼빼로와 과자 위에 초콜릿을 입히지 않고 라인을 따라 흰색과 검은색을 뿌려 장식해 놓은 겨울 나뭇가지의 것도 보였다. 필드 위에 직접 드러나지는 않지만, 이들이 없었더라면 이곳의 필드에 설 가능성도 현저히 낮아졌겠지. 그것만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언제나 관중 속에서 목소리 높여 동료들을 격려해 온 응원단의 것 또한 빼놓을 수 없었다. 오리지널로 만들어 둔 빼빼로 과자의 끄트머리에 모자를 씌운 듯 푸르고 삼각형의 조그마한 과자를 올려두고, 하얀 장식 두 줄로 마무리. 누구의 것인지 설명이 필요 없는 디자인 옆에, 마찬가지로 어두운 초콜릿을 발라 둔 스틱의 중앙쯤 위치한 분홍색 장식 두 줄. 누가 생각했는지, 기발하긴 하지만 잡히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두 사람의 버터플라이 드림을 정통으로 맞을 것만 같으니까.
그리고 마지막 하나. 남아있는 하얀 장식용 초콜릿을 탈탈 털어내어 스틱에 바르고 색색의 별 모양을 그 위에 뿌려주는 것으로 완성. 왜 이 하나만 하얀 것으로 했는지, 볼멘소리가 튀어나올 법도 하지만 그 빼빼로의 주인과 그가 섞인 이 무리를 보면 바로 이해할 것이다. 이렇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는 걸.
각 종류를 대여섯 개씩 준비해 놓고 남은 재료는 적당히 조합하여 각자 먹고 싶은 대로 간식거리를 만들어 접시 위에 예쁘게 옮겨 담았다. 이제 마지막 단계, 돌아온 일곱 동료를 눈보라가 자연스럽게 식당으로 데려오기만 하면 모든 것이 대성공인 것이다. 그런데,
“손에 든 게 다 뭐야?”
“너희들, 평소에 훈련한다고 고생하니까 오랜만에 이런 것도 다 같이 나눠 먹으면 어떨까 해서.”
“원래는 직접 만들어 줄 생각이었는데, 하필 오늘 나가게 돼서….”
“어쩔 수 없이 사 왔지. 대신 종류는 다양하게 잔뜩 사 왔으니까 걱정하지 마.”
“이건 여름 선배 의견이에요! 저희는 생각도 못 하고 있었는데, 역시 여름 선배!”
현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에 나가보니, 드물게 곤란한 표정을 지은 눈보라가 뒤를 바라보며 구조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여기 서서 이러지 말고, 얼른 들어가자!”
“그래~ 하루 종일 이거 들고 돌아다니느라 아주 다리가 아파 죽겠다고.”
“아, 그게. 얘들아….”
아련하게 울리는 듯한 누군가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곧바로 식당으로 향한 일곱 명은, 눈앞의 광경에 왜 그렇게 눈보라가 당황할 수밖에 없었는지 알 수 있었다.
“세상에! 이거 우리 주는 거야? 너희가 직접 만들었어? 이건 보미, 이건 여름이 건가? 이건 가을이고.... 겨울이는 이거다! 으하하, 탑주랑 장미는 누가 봐도 이건데? 그리고 나는….”
어느새 테이블 앞에 모여 웅성거리는 일곱 명과, 그리고 그들의 발밑에 놓인 산더미 같은 빼빼로들을 보고 있자니, 이걸 어쩐다, 싶으면서도.
“역시, 우린 둘도 없는 동료들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