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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속의 겨울
    고세이 2023. 7. 17. 20:16

    히카리는 의외로 독서가 취미이다. 의외,라고 본인이 듣는다면 두 팔을 휘저으며 잔뜩 삐친 티를 낼지도 모르겠지만. 얼핏 산만해 보이는 겉모습과 다르게 좋아하는 책 한권을 손에 붙들고 있을 때면 누가 말을 걸어도 듣지 못할 때가 있을 정도로 책 읽기를 좋아한다. 애초에 산만해 보이는 것뿐이지, 세상을 사랑하는 모습이 겉으로 드러날 뿐인 히카리가 책 속의 이야기를 싫어하지 않을 리도 없지만. 그 또한 한 권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세상이니 어쩌면 히카리가 독서를 좋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 때문에, 이런 맥락을 알고 있는 고엔지는 히카리에게 책을 선물하는 일이 잦다. 지나가며 히카리가 관심을 보인 책이나, 대화 속에서 얼핏 흘려 말한 작가의 이름 같은 것을 기억해 두었다가 생각날 때마다 사 가는 것이 어느새 당연한 일이 되었다. 책을 받은 히카리가 눈을 반짝이며 겉표지를 쓰다듬고 촤라락, 종이가 펼쳐지는 소리를 내며 내용을 빠르게 훑다가 금세 정신을 차리고 고맙다며 고엔지의 품에 와락 안겨 그 볼에 뽀뽀 세례를 붓는다. 무엇이든 선물을 받는 일은 좋은 일이지만 특히나 받은 것이 책일 경우에 히카리는 이렇게 뛸 듯이 기뻐하곤 한다. 그리고 고엔지는 그저 그 모습이 보기 좋아서, 매번 책을 사다 주는 일이 귀찮지도, 아깝지도 않은 일이 된 것이다.
     고엔지가 책을 주고, 히카리가 그것을 받아 행복해한다. 그것이 당연했는데, 그래서 고엔지는 지금의 상황이 아주 조금은 어색했다.

     안 받을 거야?
     아, 아니. 고마워.

     「너의 겨울」
     척 보기에도 로맨스였다. 애틋하고 아련한 소설. 히카리가 제게 책을 건넨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것도 서정적인 연애 장르를. 내가 읽은 건데 너무 좋아서. 슈야도 읽어봤으면 좋겠어. 의문이 담긴 눈으로 제 연인을 바라보고 있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물음으로 채 나오지도 않은 답을 줄줄 내놓는 히카리다. 고엔지의 손에 책 한권을 턱 넘겨주고는 방으로 들어가나 싶더니 똑같은 제목이지만 표지가 다른 책을 한권 더 가지고 나온다.
     한 쌍의 연인, 서로 다른 두 시점. 두 명의 작가가 같은 전개로 각각의 주인공을 세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총 네 파트로 이루어진 목차. 그런데 자세히 보니 겨울은 한 페이지뿐이다.
     봄, 여름, 가을. 나의 계절을 네가 다 가져가 버려서. 너의 겨울은 내가 전부 가져갈게.
     너를 사랑하는 나는 일 년 내내 겨울이었다.

     나는 마지막 겨울이 가장 좋아.

     너의 겨울이 마지막이 되도록. 책 속의 주인공처럼, 서로의 계절에 가득 찰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그리고 나도, 너의 겨울이 되기를.
     겨울을 품에 안고 고엔지 슈야는 그렇게 고마움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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