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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늦지 않았어
    고세이 2022. 5. 27. 00:33

    "일주일 뒤에 친구 결혼식이래."
    "그래?"
    "응. 부케는 내가 받기로 했어. 다들 이미 결혼해서 마땅한 사람이 나밖에 없대."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그저 정보 전달의 목적을 가지고 대화를 주고받았다. 고엔지 슈야와 세이나 히카리가 동거를 한 지도 벌써 5년이 훌쩍 넘었다. 막 20살이 되었을 즈음 연애를 시작하고 그사이 2년의 공백. 그 기간을 제외하더라도 절대 짧지 않은 시간이지만 흔하게들 겪는다는 권태기라던가 크게 싸운 적도 없이 순탄하게 잘 지내왔다. 그동안 주변 사람들은 대부분 가정을 꾸리고 가족들과 함께 각자의 행복을 찾는 길을 택했다. 그리고 너는...
    "히카리는? 부모님께서 이제 슬슬 결혼하라고 하신다거나..."
    "우리 엄마랑 아빠? 글쎄...아직은. 그리고 슈야가 있잖아~"
    정말 그걸로 괜찮은 것일까.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좋다. 충분히 행복하다. 당연한 얘기지만, 지금의 상황을 크게 바꾸고 싶다거나 상대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그저 조금, 아주 조금 자신의 욕심을 채우고 싶은 것뿐이다. 부수적인 결과로 그 바람이 커다란 변화가 될지도 모르지만.
    "...슈우야아, 듣고 있어?"
    "어? 미안. 뭐라고 했지?"
    "정말~ 밖에 눈 오니까 나가자구! 올해 첫눈 아니야? 빨리빨리!"
    어느새 나갈 준비를 마치고 현관 앞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사랑스러운 연인. 감출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목도리를 둘러주니 히카리는 간지러운지 움츠러들었지만, 그 표정에는 변함없는 장난기가 서려 있다. 몇 년이 지나도 여전한 너의 웃음을 앞으로도 계속 볼 수 있을까. 계속, 보고 싶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거리로 나오니 해가 질 무렵이라 생각보다 사람이 많지 않았다. 손을 맞잡은 채 하나둘씩 켜지는 가로등 불빛 아래를 지나 눈을 맞으며 걸음을 옮겼다. 쌓일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지만 기분 좋게 맞으며 지나갈 수 있는 정도의 눈이 내렸다. 길이 미끄러워 조심하라고 말을 꺼내려던 순간, 아니나 다를까 바로 옆에서 발이 미끄러져 버둥거리는 고엔지 슈야의 연인이었다. 다행히 넘어지기 전에 붙잡아서 다치지는 않았지만, 그 모습이 어린아이에게는 퍽 위험해 보였나 보다.
    "언니 괜찮아?"
    6, 7살쯤 되어 보이는 작은 아이가 다가와 올려다보며 물었다. 묶을 수 있을 정도의 단발머리를 양갈래로 귀엽게 묶은 여자아이. 악의라고는 보이지 않는 순수한 눈동자로 이쪽의 눈을 마주하며 소통한다.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아이에게 자연스럽게 허리를 숙여 눈높이를 맞추는 세이나 히카리.
    "걱정해줘서 고마워. 여기 멋진 오빠가 잡아줘서 괜찮아."
    "응, 나도 봤어! 오빠 정말 멋지더라."
    "이 오빠 어때?"
    "으음...잘생겼어!"
    그 말에 자신의 연인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슈야, 들었어? 잘생겼대~ 자신의 익숙하지 못한 반응을 언제나 익숙하고 새로운 듯이 즐기는 연인은 몇 년이 지나도 그대로다. 팔꿈치로 툭툭 치며 대답을 종용하는 히카리에, 자신을 좋게 평가해준 아이를 상대로 아니라고 하기도 조금 무안해서 애써 고맙다 인사하자, 마침 그때 아이의 부모님이 자식을 데리러 와 그대로 손을 흔들어주었다. 양손에 부모님의 손을 꼭 쥐고 돌아가는 뒷모습이 너무나도 화목해 보여, 나도 모르게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나 보다.
    "슈야, 무슨 일 있어? 요즘 이상해. 아까 집에서도 그렇고..."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미안."
    겁이 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 혼자 너무 앞서 나가는 건 아닐까. 너를 구속하게 되는 건 아닐까. 네가 거절한다면, 겨우 찾은 이 일상의 행복이 다시 무너지는 건 아닐까.
    크고 작은 두려움들은 겨우 나를 억누르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너는 나를, 나는 나의 너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네가 행복했으면 했다. 아니, 감히 내가 너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다. 나 자신으로 인한 커다란 고통을 안겨준 나는, 아직 너에게 상처일지도 모른다. 이기적이다. 고엔지 슈야.
    부딪혀 보기도 전에 겁내고 피하는 건 멍청한 거야! 해보지 않으면 모르잖아?
    ......

    "히카리."
    "응? 왜 그래?"
    "할 말이 있어."
    밖으로 나온 후 벌써 꽤 멀리 걸어왔기 때문인지 거리에는 둘 뿐이었다. 흰 눈이 조금씩 내려앉은 너의 은빛 머리를 정리해주며 고요한 밤을 느낀다. 이렇게 긴장하는 것도 오랜만인가. 처음 너에게 고백했던, 몇 년 전 그 크리스마스 날 밤. 그날 밤의 딱 두 배 정도로 떨린다. 내가 무슨 말을 꺼낼지 가만히 눈을 맞추며 기다리는 너를 앞에 두고 목소리를 내기 전 숨을 가다듬는다.
    "우리가 처음 만난게 벌써 10년도 더 된일이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너와 함께여서 더 즐거웠고 또 너와 함께여서 힘든 일도 헤쳐나올 수 있었던 것 같아. 곁에서 나를 지탱해주는 사람 중 네가 있어서 고맙고, 다행이라고 생각해.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히카리 너라면 벌써 알아차렸을지도 모르겠어. 너에게 그런 상처를 주고도 이런 말을 하는 걸, 이기적이라고 생각할지도 몰라. 아니, 스스로도 그렇다는 걸 이미 알고 있어. 그래도, 이 말을 하지 못하면 평생 후회할 것만 같아서. 인생을 후회 없이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하게 해준 사람이 너라서."
    아, 네가 어떤 표정인지 알 수가 없어. 차가운 공기에 퍼져나가는 새하얀 입김. 네 얼굴을, 바라볼 수가 없어.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안정적인 나중을 위해서. 그런 이유는 잘 모르겠어. 단지 내가 바라는 건...너와 가족이 되고 싶어. 세이나 히카리라는 사람과 평생을 함께하고 싶어. 결혼한다고 해서 지금과 완전히 다른 생활을 보낸다던가, 갑자기 부부라는 이름에 얽매인다던가 그런 건 아니지만, 너와 내가, 우리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걸 모두가 인정해줬으면 좋겠어. 서로가 서로의 동반자로서, 행복해질 수 있게."
    이젠 스스로도 모르겠어.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정리되지 않은 단어들을 내뱉으며 그저 이 마음이 너에게 온전히 전해지기를 원할 뿐이야.
    "...허락해줄래?"

    시선을 들어 마주 본 너의 얼굴은.
    두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 곧 뺨을 타고 흐를 것만 같았다.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지며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이 사람의 우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아. 바란 것이 무색하게도 세이나 히카리는 너무나도 쉽게 울음을 터뜨렸다. 어떻게든 달래주려 손을 뻗어 안아주었다. 너무 성급했나 보다.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한가 보다. 미안함과 자책감이 올라와 덮으려던 순간, 들려왔다. 훌쩍임 속에 또렷이 울리는 너의 마음.
    "…치사해, 혼자만 이렇게 멋있는게 어딨어."
    "히카리…"
    "울렸으니까...책임져야 해, 평생."
    "...정말...괜찮아?"
    "...알잖아. 너밖에 없어."
    품속에 고개를 파묻고 웅얼거리는 너를, 단단히 껴안았다. 금세 장난꾸러기로 돌아와서 코가 맹맹한 목소리로 자신의 아버지에게 눈총받을게 분명하다며 나를 걱정해주는 너는, 세이나 히카리구나. 고엔지 슈야가 해야 할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고마워. 사랑해.""



    "세이나 히카리 남편분~ 아, 아니지. 고엔지 히카리 남편분~"
    평소와 같이 잘 시간이 되어 옆에 누웠을 뿐인데,
    "가, 갑자기 왜..."
    "이제 이렇게 해야지! 틀린 말도 아니고. 맞지? 뭐, 나는 계속 슈야라고 할 거지만."
    "딱히 상관은 없지만..."
    고엔지 히카리. 고엔지 히카리. 괜스레 간질거리는 느낌이 난다. 글자가 바뀌는 것뿐이지만, 성이 같아지면 히카리는 장난 거리가 늘었다고 오히려 재밌어할 것이다. 네가 행복하다면 어느 쪽이든 좋아. 언제나 웃는 너의 얼굴이 보고 싶어, 목소리가 듣고 싶어. 자기 전 이마에 입을 맞추면 미소 지으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너를 사랑해.
    히카리에게, 슈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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