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only usuality고세이 2022. 6. 14. 20:33
오전 10시가 넘어서야 느릿하게 눈을 뜨고 작게 하품을 하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다. 매일 아침의 첫 기상시각은 9시쯤이지만, 일어나는 시간에 맞춰 준비된 아침이 식기 전 자신을 깨우는 목소리에 눈이 떠지는 것뿐이다. 그가 자신을 위해 차린 가벼운 식사.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 나면 어느새 그는 나갈 시간이 되고, 인사차 가볍게 입을 맞추며 배웅해준 후 역시 아직 잠이 덜 깼다면서 흐느적흐느적 다시 침대로 향하는 일은 이제는 습관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조금 더 눈을 붙인 후 햇살이 눈가를 간지를 때, 세이나 히카리의 하루는 그제야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씻으면서 졸음을 흘려보내고 거실과 안방의 창문을 열어 집안 환기를 시킨다. 그리고 점심 메뉴를 고민하면서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보면 오전 시간은 금방 가버린다. 몇 가지 요리를 떠올리다가 유부초밥이 생각났다. 혼자서도 어려운 메뉴는 아니지만 생각보다 상당히 번거롭다. 이런 메뉴는 곧잘 저녁으로 미뤄지곤 하는데, 제 연인과 함께 만들면 지루하지도 않고 무엇보다 그게 더 맛있기 때문이다. 똑같은 팩에 들어있는 똑같은 재료인데 왜 그렇게 되는 걸까? 혹시 사랑의 힘? 혼자서 이런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띠는 히카리. 저녁 메뉴를 정한 이상 마트에 갈 일이 생겼으니 오늘은 그가 마칠 시간에 맞춰 마중이라도 가야겠다.
벌써 오후 1시가 다 돼간다. 빨리 점심을 해결하지 않으면 때를 놓치고 말 것이다. 아직 무엇을 먹을지 정하지 못한 히카리는 결국 그에게 전화를 건다. 자신의 연인은 어떻게 매일매일 다른 메뉴를 척척 맛있게 내놓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슈야, 나 점심 뭐 먹지?
냉장고 어디에 뭐가 있는지.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거라면 계란이 남아있으니 프라이도 괜찮고, 소면은 두 번째 선반 맨 아래칸에서 꺼내면 된다고 하며 어느 정도 세기의 불에 몇 분 삶아야 하는지, 소스는 어떻게 만드는지. 자신에게 맞는 요리의 난이도까지 고려해서 전부 하나하나 알려주는 그에게 그 정도는 알고 있다며 괜히 볼멘소리를 해본다.
너는 점심 먹었어?
금방 웃음을 터뜨리며 물으니 식사 여부는 물론이고 뭘 먹었는지부터 누구랑 먹었는지까지. 처음엔 일일이 물어봤어야 했는데. 물론 그것도 나쁘진 않았지만. 이제는 묻지 않아도 자연스레 대답하는 그는, 어느새 세이나 히카리라는 사람에게 물들어버린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니 더욱더 이 사람이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저녁은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유부초밥! 사실 점심으로 만들어먹을까 했는데, 슈야 마중도 나갈 겸 같이 장 보러 갈까 싶어서.
그래 그럼. 6시쯤 마치니까 근처로 와줄래?
응, 알겠어. 퇴근까지 파이팅!
즐거운 전화를 끊고 점심을 대충 챙겨 먹으니 벌써 2시. 시간을 확인한 후 일어나 설거지를 하고 청소기를 돌린다. 이렇게 몸을 움직이고도 하루 중 기온이 가장 높을 때라 그런지 노곤하게 눈이 감겨서, 잠도 깨고 바람도 쐴 겸 마당 한구석 작은 화단에 물을 주기 위해 밖으로 나선다. 의외로 독서가 취미인 히카리는 마당으로 향하기 전 오늘 읽고 싶은 책도 책장에서 한 권 뽑아 든다.
화단의 크기 자체는 작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꽃들로 가득한 것을 보고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흐뭇한 기분이 된다. 꽃이라면 크고 화려한 것도 좋지만 히카리는 길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에 더 정감이 간다고 한다. 작은 민들레나 귀여운 봄까치꽃, 꽃뿐만 아니라 사이사이의 토끼풀까지. 조그마한 이들이 강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용기를 얻는다나.
그렇게 한동안 꽃을 보다 자리를 옮겨 햇빛이 잘 드는 적당한 곳에 앉아 가지고 나온 책을 펼친다. 바깥바람을 좋아하는 히카리를 위해 이곳에 만들어진 자리는 작은 테이블과 의자를 가져다 놓았을 뿐이지만 이렇게 사소한 것에서도 그의 애정이 듬뿍 느껴져서, 이렇게 사소한 것에서도 히카리는 행복하다. 집중해서 한참 동안 독서를 하다가 금세 차가워진 바람이 이야기 속에서 여행하던 의식을 되돌려주면 팔을 쓸며 다시 실내로 들어간다.
5시 20분. 이제 슬슬 나갈 준비를 해야 늦지 않게 도착하겠지? 가벼운 외투를 걸치고 휴대폰과 지갑을 챙겨 여유롭게 문을 나섰다. 이제 봄이라고 생각했는데, 저녁은 역시 아직 춥구나... 새벽부터는 비도 온다고 했고. 오늘따라 옷자락 사이사이로 스며드는 바람에 소름이 오소소 돋는 것을 느낀 히카리는 어느새, 도로 위 한 카페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걸까. 건물 바로 앞 횡단보도에서 자신의 연인을 기다리며 서성거리는 고엔지 슈야. 그 맞은편 저 멀리서부터 그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며 다가오는 세이나 히카리가 보였다. 옅게 웃으며 도로를 건너니 히카리의 손에 들려있는 따뜻한 라떼 한 잔. 자세히 보지 않으면 티도 안 나지만, 두 볼이 상기된 건 찬바람을 맞아서였나 보다. 원래도 고엔지에 비해 몸에 열이 별로 없는 히카리는 이번 겨울 동안에도 내내 춥다며 그에게 꼭 붙어 다니곤 했다. 차가워진 두 손으로 종이컵을 꼭 쥔 채 웃는 얼굴로 조잘조잘 하루 안부를 전하는 히카리의 두 손등을 따뜻한 자신의 두 손바닥으로 감쌌다.
시원하지!
전해지는 온기가 딱 마음에 든다는 듯 한층 더 짙어진 웃음이 표정에 드러난다.
겨울 옷은 아직 다 정리하기엔 이른 것 같네. 집에 가면 따뜻한 차 끓여줄게.
응! 나 마트 가서 사고 싶은 과자 있어. 이번에 새로 나온 건데......
평범하고 흔한 일상. 그러나 너무나도 소중한 하루하루. 너와 함께 하기에 매일같이 이 일상을 바라며 하루를 마무리하게 돼. 우리는 언제쯤의 미래가 아닌, 언제나의 현재. 언제나 너의 모든 것을 사랑해.
'고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누름꽃 (0) 2022.06.29 05300706 (0) 2022.06.24 썰 백업 2 (2022.01.01 ~ 2022.03.31) (0) 2022.05.27 썰 백업 1 (2021.05.28 ~ 2021.12.31) (0) 2022.05.27 늦지 않았어 (0) 2022.0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