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는 즐기는 것이라, 그런 노랫말이 있었던 것도 같다. 진지하게 응하는 순간부터 오히려 서로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기도 하고, 결국에는 갈라서는 케이스도 많다. 너와 나도 딱 즐길 수 있을 만큼, 적당히 즐거운 연애였다. 나름 로맨틱한 시간과 장소에서 시작된 연인으로서의 우리는 데이트도 많이 다녔고, 선물도 주고받았다. 손을 잡고 걸으며 설레는 순간도 있었고 남몰래 입맞춤하고는 서로를 마주 보며 미소 지은 일도 적지 않았다. 오래전부터 나를 알고 지내던 사람들은 그런 고엔지 슈야를 낯설게 느끼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나에게 낯선 변화를 일으킨 너를 떠올리며 당연하다 생각하는 것도 같았다. 돌이켜보면 너는 참 손이 많이 가는 사람이었다. 주위를 잘 살피지 않아 몸에는 크고 작은 멍이 들기 일쑤였고 언제나 자신의 의견을 내세워 나를 붙잡아 끌고 갔다. 목소리가 작은 편도 아닌데 말까지 많아서 항상 종알거리는 목소리가 귓가에서 끊이질 않았다. 세이나 히카리는 제멋대로였고, 고엔지 슈야는 여유가 없는 사람이었다.
시작부터 잘 맞지 않았을 뿐이다. 시간에 쫓겨 첫 단추를 잘못 끼워버린 것처럼. 그래도 끝까지 잘못되기 전에 알아차려서 다행이라고, 너와 나는 처음부터 인연이 아니었다고.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시작하면 돼. 너의 어리광을 잘 받아줄 수 있는 사람. 너를 웃게 하는 사람. 너의 그 빛이, 색채가, 세이나 히카리가 바라지 않게 할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은 고엔지 슈야가 아니다. 고엔지 슈야는 내가 아니다. 나는 더 이상 네 곁에 있을 수 없어, 히카리.
언젠가 네가 나를 다시 만나 울음을 터뜨려도, 더 큰 웃음으로 너를 감싸줄 그 사람과 행복하길 바라. 사실은, 그때가 되면 네가 울지 않았으면 좋겠어. 너무나도 다정한 너를 버리고, 나를 원망하면 좋겠어. 그렇게 네가 마음이 풀린다면, 나를 잊어준다면.
네 마음속에서 고엔지 슈야를 잊고, 그에 대한 미움도, 슬픔도, 분노도 전부 잊어주길 바라는 건 너무 큰 욕심일까.
바쁜 일상에 묻혀 지내다 보면 나도 널 잊게 되겠지. 세이나 히카리의 활기찬 목소리도, 앳된 얼굴도, 언제나 장난스러웠던 모습까지.
잊어야 하는데, 잊을 수가 없어.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너를 가슴 속에 눌러두고 네가 바라지 않게 언제까지나 그곳에 빛을 비출게. 인연이 아닌 운명으로 우리를 바꾸어 보일게. 나에게 스며든 너를 끝까지 지켜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