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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이 아니라 악당이었다. 영웅은 정의감에 넘쳐 사람들을 구하지, 제가 구하고 싶은 것을 골라가며 자신의 의지에 따라 구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고엔지 슈야는 정체를 숨기고 활약했고, 많은 것을 구했다. 그래, 마치 영웅처럼. 그는 영웅행세를 하는 악당이었다. 구하고 싶은 것은 사람이 아니라 그의 추억을 간직한 시절이었고, 그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정의감이 아니라 기호였다. 목적의 달성만을 위한 행동.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느니, 뒤에서는 구해주고 있었다느니 하는 것들은 고엔지 슈야였던 그를 구하고자 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흔한 영화의 결말에서 진정한 영웅이 적 아군 가리지 않고 손길을 뻗듯이.
과정이 어찌됐든 결과적으로 그는 영웅이 되었다. 악당이었던 기억은 모두가 잊은 듯 했다. 그를 적으로 두었던 이들의 치열한 싸움만이 기억되고, 그들이 정확히 누구와, 무엇과 고전했는지는 아무도 꺼내려들지 않았다. 그는 잊히고 고엔지 슈야만이 남았다. 고엔지 슈야였던 그는 잊혔다. 세상에서 그를 기억하는 이는 그 자신과, 그가 돌아갈 곁의 사람뿐이다.
영웅이 된 너지만 결과만을 기억하는 네가 아니라서, 영웅을 되길 바라고 악당이 된 너도 아니라서. 모두가 그를 잊어도 나는 너를 기억할게. 그도, 고엔지 슈야도 아닌 '너'를 온전히 기억할게. 세상을 구하고 싶었던 네가 아니기 때문에, 구하고자 하는 것만을 향해 앞서나간 너이기 때문에. 그러나 다정함으로 네 곁을 스쳐가는 사람들을 지나칠 수 없었던 너이기 때문에.
어떤 이는 정상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끝까지 산을 오를 수 있고, 어떤 이는 끝이 보인다는 사실만으로도 긴 거리를 완주할 수 있어. 나는 네가 돌아올 거라는 걸 확신했기 때문에 널 기다릴 수 있었고, 너도 내가 기다릴 거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돌아올 수 있었겠지.
모두를 구한 악당을, 내가 구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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