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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가 없는 편지다. 보내는 사람의 이름도 적혀있지 않다. 우표조차 붙어있지 않은, 불친절한 편지봉투. 누군가 하고 생각나는 사람들을 여럿 떠올리다, 아, 네가 생각났다. 편지는,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에게 마음을 전하는 수단. 지금 내 곁에 있지 않은 사람. 그럼에도 마음을 전하고자 하는 사람. 불친절할 수밖에 없는 사람. 당신. 너다울 수밖에 없는 편지봉투에, 얼마나 조심스럽게 이 편지를 편지함에 꽂아놨을지 생각해 본다. 조금은 우스워보일 수도 있는 그 광경에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봉투를 열었다.
더보기생일 축하해, 히카리.
이렇게 너도 모르게 편지 한 장 전해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에 기분 나빠할지도 모르겠어. 미안해. 미안하다는 말은 역시 쓰고 싶지 않았는데, 어쩔 수가 없네. ...미안해. 생일 축하 편지를 우울한 얘기로 채우는 건 너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을 것 같아서,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써볼까 해. 그동안 너에게 배운 거라곤 이런 게 다여서. 이런 게 다지만, 나에겐 너무 소중한 변화고 배움이라.
생일인데 친구들이랑 약속은 잡았어? 네가 좋아하는 레스토랑에 가서 스파게티도 많이 먹고, 디저트도 맛있는 걸로 사 먹어. 선물도 잔뜩 받고, 축하의 말로 하루가 가득 채워지길 바라. 그래도 역시, 가장 먼저 축하해 주는 건 나이고 싶어서... 이것도 욕심일지 모르지만. 이 솔직한 욕심이, 편지를 쓰는 이유가 되기도 했어. 네가 이 편지를 받고 기뻐해주면 좋겠어. 나를 떠올리고 편지를 읽어보지 않아도, 그대로 쓰레기통에 버려져도, 그걸로 네 기분이 조금이나마 나아진다면 나도 좋아. 그렇지만, ...너는 상냥한 사람이니까. 그러지 못하겠지. 아니, 그러지 않겠지. 너는 지금도 여전히 내가 사랑하는 세이나 히카리니까.
너의 하루를 축하해. 네가 세상을 만난 날이 있어서, 내가 널 만날 수 있는 날이 있게 해줘서, 고마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어. 널 다시 만날 수 있을 날이... 빨리 오면 좋겠다. 널 만나 많은 변화를 겪은 나지만, 그런 널 사랑한다는 사실만은 변함없이.
널 사랑해, 히카리.
정말, 그럴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편지에 온갖 염려를 다 적어 보내는 너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전하며, 편지지를 다시 봉투에 고이 넣어 책 사이에 끼워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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