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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Quill - 너에게 쓰는 유서 (그믐달님)
    드림 trpg 2022. 9. 17. 18:06

    세이나 히카리 / 감정: 좋음, 문장력: 보통, 필체: 나쁨 / 기술: 영감

     

     

     

    지금 내가 이런 편지를 쓰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너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눈물을 참으며 나를 꼭 안아줄 것 같기도 하고, 답지 않게 화를 내며 언성을 높이는 모습도 상상돼. 그래도 결국 너라면 나를 이해하고 기다려주겠지. 내가 왜 이런 글을 쓰게 됐는지 말이야. 사실 별다른 이유는 없어. 그냥, 언젠가 내가 세상과 작별할 시기가 왔을 때, 너는 나를 어떤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을까, 나는 너와 어떤 마지막을 만들어가야 할까, 그게 궁금해져서 생각해본 것 뿐이야. 마지막이 언제 어떻게 올 지는 알 수 없으니까, 이 편지가 내 마음을 대신할 수 있도록 미리 적어두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아서. 그때의 너에게는 미안하다고, 지금 전해둘게.

    세상은 나 하나쯤 없어도 아무 일 없이 잘 굴러가겠지만, 내가 없는 세상의 너에게는 아무 일로나 기억되고 싶어. 정말 사소한 거라도 좋아. 처음 만났던 날이나 특별한 기념일, 그런 거창한 것이 아니라도 매일 아침 나를 깨워줄 때의 네 마음은 어땠는지, 아니면 어느 날 문득 내 생각이 났던 일은 없는지. 너는 나를 너무 아끼니까, 사소한 것만 기억하는 게 아니라 사소한 것까지 마음에 담아두고 있겠지만 적당한 때가 되면, 네가 나를 보내줄 준비가 되면, 그때는 나를 보내줘. 먼저 떠나간 나에 대한 감정은 그리움으로 충분해. 그것만으로도 나는 너를 사랑하니까. 나 없이도 잘 지내줘, 슈야. 후회라던가 죄책감 같은 건 가지지 말고. 너는 너의 삶을 살아가. 그게 너를 사랑하는, 내가 줄 수 있는 마지막 사랑이야.

    네가 나에게 처음으로 사랑한다 말해준 게 언제인지 기억나? 나는 그 순간을 잊지 못해. 그 날은 우리가 연인이 되었던 날도, 서로 사랑하는 이들을 축복하는 날도 아닌, 아주 평범한 어느 날이었어. 여느 밤처럼 내가 먼저 너의 품에 안겨 잠이 들었고 너는 나를 보며 작게 속삭였지. 달도 뜨지 않아 특히나 더 어두웠던 그날 밤이 이토록 생생하게 남아있는 건, 고요함 속 너의 고백만이 나에게 또렷하게 새겨졌기 때문이겠지. 나에게 울려 퍼지던 심장의 고동 소리, 나를 쓰다듬어주던 손의 온기, 다정하게 온몸을 감싸는 너의 목소리. 이 모든 것이 너무나도 소중해서 이제는 눈물이 날 것만 같아.

    고엔지 슈야, 너를 오래도록 사랑할 거야. 내가 없는 세상에서, 너의 기억 속에 내가 존재한다면 그걸로 나는 행복할 거야. 내가 너를 사랑한 만큼, 너도 너를 사랑하기를. 그렇게 나를 기억해주기를.

    네게 띄우는 마지막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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