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세이

다시, 너와 나.

세상에동명이인이얼마나많은데 2024. 8. 1. 14:13

파이어 토네이도 더블 드라이브. 축구선수 고엔지 슈야가 일본 대표 시합에서 딱 한 번 썼다는 전설의 기술. 그것에는 여러 가지 화려한 수식언이 잔뜩 붙어 그 위용을 더욱 실감 나게 해 주었다. 그렇게나 강력하고, 그렇게나 아름다운 불꽃의 슛 기술이 올해 홀리로드 결승전에서 등장할 것이라는 사실이 또한, 많은 사람을 충격에 빠뜨리기도 할 것이다. 긍정적 의미이든, 부정적 의미이든.

고엔지 슈야는 올해로 이시드 슈지이기를 그만두고 싶었다. 엔도 마모루를 믿고 여기까지 왔다. 엔도 마모루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가 일본에 있는 지금이 아니면 안 되었다. 그래서 그는 더욱 절박하게 매달렸다. 피프스섹터의 와해를 위해 이 슛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지? 굳이 그 필살기가 아니더라도, 라이몬의 강함은 진짜였다. 설령 드래곤링크의 정체를 모른다 해도 그 아이들은 스스로 성장해서 충분히 관리 축구를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확신의 아래서 무언가 꿈틀거렸다. 잊어서는 안 될 것을 잊은 기분.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잊은 것은 아니었다. ...... 히카리.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그 이름을 나지막이 읊조려 보아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파이어 토네이도 더블 드라이브는 분명 세이나 히카리의 아이디어로 시작해 만들어진 기술이기는 했다. 그 기술을 떠올릴 때마다 히카리가 생각나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자체가 홀리로드의 결승을 장식해야 할 이유를 찾아주지는 못했다. 그저 지금은, 필요하다는 생각이 더 강했기에, 몸이 먼저 움직였다.

츠루기 쿄스케를 찾아갔다. 현 라이몬 중학교의 에이스 스트라이커. 기술의 성공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무작정 그를 데리고 와 연습을 시키고 또 시켰다. 라이몬의 승리를 위한 필수조건이라는 생각이 그 외의 다른 것을 모두 잊고 츠루기를 훈련시키는 데에 몰두하게 했다. 고엔지 슈야의 전설의 기술이 왜 필요한지는 그의 머릿속에서 작은 점이 되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이 무엇이든, 그것에 충실하게 임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그에게 딴생각은 용납되지 않았다. 성공할 때까지 ‘한 번 더’를 외쳤다. 오늘로는 안 되어, 되는 날까지 ‘다시’를 주문했다. 혹독하게 훈련에 임하는 츠루기 쿄스케를 보며 소싯적의 자신을 떠올릴 여유 따위는 그에게 없었다. 여유는, 없었으나.

 

“슈야의 파이어 토네이도도 동시에 여러 개를 쏘면 더 강력한 슛이 될까?”

“동시에 여러 개?”

“왜, 얼마 전에 선풍기 광고를 봤거든. 두 날개가 같이 돌아가면서 더 시원해진다고 했어! 파이어 토네이도도 회전력을 이용하는 거니까...... 너무 막연한 생각인가?”

나의 반응을 조심스레 기다리던 너의 얼굴은, 어땠더라. 조마조마해하며 미간을 좁히다, 괜찮을 것 같다는 나의 말에 금세 표정이 풀려 눈꼬리를 한껏 접어 티 없이 맑은 웃음을 짓던, 너의 얼굴은. 까르르 터지는 웃음 섞인 목소리와 내 품에 파고들던 작지만 확실했던 온기는. ...... 어땠더라.

그립다. 그립다. 그립다. 머릿속에 그려지는 네가. 그리움이 만들어 낸 기억인지, 기억 속에 존재하는 추억인지. 자책감이 만들어 낸 우울인지, 우울 속에 존재하는 그리움인지. 사무치고, 또 사무친다.

미안하고, 또 미안해.

나는 여전히 너를 사랑해. 그래서 더......

 

깊이 파고들수록 자꾸만 생각나는 사람이 있어, 휴식을 찾아 그 사람에게 기대고 싶다는 생각이. 생각이......

“오늘은 그만하지.”

거리의 가게들이 하나둘 문을 닫을 시간이라 다행이었다. 속내를 자연스럽게 감출 수 있어서. 저 못지않게 날카로운 츠루기가 혹여 무슨 일이냐 질문을 던진다 해도 그저 기술의 구상에 도움을 준 이가 떠오른 것뿐이라고, 그렇게 자신을 어를 수 있어서. 저녁을 한참이나 넘겨 중학생을 홀로 돌려보내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가혹한 훈련은 당연하다는 듯하게 하는 고엔지 슈야였지만 아직은 어린 그를 밤거리에 매몰차게 내보내기엔 여전히 다정한 고엔지 슈야이기도 했다.

 

“안 데려다주셔도 되는데...... 감사합니다.”

한 번 자기 편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한 상대에게 그는 마음을 풀어놓았다. 역시, 아직은 어린아이답다. 가는 도중, 그리 긴 시간은 아니지만 두 사람 다 말수가 적은 편이라 어색하게도 느껴질 수 있는 이 무거운 공기 속에서 고엔지가 먼저 화두를 던졌다. 둘의 공통된 주제라고 해 봐야 축구, 그중에서도 현시점에서는 자유로운 축구를 위한 혁명 정도였기에 대화를 시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레지스탕스의 시작이었다는 그 사람,”

“그 사람?”

이시드 슈지로서도 아무런 정보를 얻을 수 없었던 ‘그 사람’이다. 키도 유우토의 제국을 주축으로 레지스탕스가 활동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정작 그 시초가 된 사람은 다른 이라는 것 정도가 성제인 그가 간신히 알아낼 수 있었던 소식이다. 베일에 싸인 ‘그 사람’에 대한 것은 고엔지 슈야도, 이시드 슈지도 궁금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 사람이 언젠가 라이몬에 왔을 때, 성제님을 신경 쓰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혁명의 시작이 된 사람이니 당연한 일이야.”

“그것도 그렇지만......”

“다른 할 말이라도 있나?”

“...... 처음부터, 당신이 고엔지 슈야라는 걸 알고 있다는 듯이...... 이름을 불렀습니다. 고엔지 슈야의...... 이름을.”

“......”

“그러고는 본인도 당황해서 잘못 말했다며 금방 얼버무리긴 했지만요.”

“...... 그 사람이 레지스탕스의 시초라는 건가?”

“아, 네. 엔도 감독님께서 말해주셨습니다.”

끼익. 때맞춰 도착한 츠루기의 집 앞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고엔지 슈야의 사고 또한 멈춘 듯했다. 내일도 같은 시각, 같은 장소라는 것을 상기시키며 츠루기 쿄스케를 집안으로 들여보내고 나서야 그는 부러 굳혔던 얼굴을 일그러뜨릴 수 있었다.

고엔지 슈야를 이름으로 부르는 사람은 가족을 제외하면 단 한 사람밖에 남지 않는다.

 

빛, 빛, 나의 빛 되는 사람아. 나를 아는 이. 고엔지 슈야를 아는 이. 슈야를 아는 이.

너밖에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엔도 마모루는 어떻게 이시드 슈지가 고엔지 슈야인 것을 알았을까. 실종되어 다른 사람이 된 나를, 어떻게 알아보았을까. 치기 어린 시절의 우정으로? 그렇겠거니, 하는 직감으로? 아니, 아니다. 너였구나. 너였구나......

내가 무얼 할 줄 알고, 내가 무어가 될 줄 알고 그렇게 나를 사랑해 주니.

이별은 너에 대한 마지막 배려였다. 내가 둘러줄 수 있는 최소한의 방어선이었다. 그러나 안쪽으로 돋쳐있는 가시는 너를 아프게 했다. 알면서도 그것으로 너를 꽁꽁 둘러쌀 수밖에 없었다. 축구선수 고엔지 슈야의 행방불명은 그 방어선 밖에 존재하는 것이었다. 스스로 가시를 찢고 나온 너만이, 그곳에 감추어진 진실을 알아볼 수 있었구나.

 

실종으로 마무리되었어야 할 사건이 단 한 사람에게만은 이별로 시작되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고엔지 슈야로부터 시작된 이별이었기에 알아챌 수 있었다. 이 사라짐은, 모두에게 고하는 ‘만들어진 이별’이라는 것을. 작별을 건네받은 유일한 사람은, 재회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했다.

 

내가 원하는 사건을, 내가 원하는 인물이. 네가 만들어 준 배경 속에서.

쉬지 않고 달려만 왔던 이 길의 목적지를 코앞에 두고서야 나는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두 뺨을 적신 눈물에서 네 손의 온기가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더더욱 숨죽여 울 수 있었다. 모든 경기를 마치고 도착한 후에는 한참 동안 울어왔을 너를 안아줘야 하니까. 내가 너에게 새긴 그 문신 같은 상처를 더 아프게 지워줘야 하니까.

돌아갈 수 있을까, 돌아가야 할까. 멍청하게 고민해 왔던 것이 무색하게 너는 처음부터 답을 내고 있었구나. 기다리고 있겠다는 답을.

 

감상에 젖어 있을 시간은 길지 못했다.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으니까. 그는 하루빨리 고엔지 슈야로 돌아가야 했다. 세이나 히카리의 기술이 필요한 이유는 여전히 찾지 못했으나 세이나 히카리가 필요했기 때문에. 다녀왔다는 인사를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랐다.

 

***

 

홀리로드 결승전. 성제가 직접 감독을 맡은 세이도우잔 중학교와 혁명의 주역인 라이몬 중학교의 시합. 우려하고 있던 드래곤 링크의 등장은 아직인 듯했다. 전반전을 무사히 마친 후에야 자기 선수들에게 마음껏 싸우라, 지시를 내렸다. 지금까지 성제 이시드 슈지만을 믿고 따라와 준 피프스섹터의 최정예 선수들. 그들이 진심을 발휘해 싸우지 않는다면 이 시합은 의미가 없다고, 그리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마지막 시합을 통해서나마, 고마움과 미안함을 담은 고엔지 슈야의 마음 또한 전하고자 했으나...... 그 바람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세이도우잔 중학교는 감독 채로 팀이 축출당했고, 라이몬 중학교는 후반전부터 드래곤 링크와의 새로운 시합을 치르게 되었다. 호루라기가 울리는 동시에 시작된 화신의 공격에 라이몬 진영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열한 명의 숙련된 화신술사는 그야말로 하나로 연결된 용의 각 지체처럼, 체스의 말처럼 빠르고 정확하게 움직여 강하게 라이몬을 압박해 왔다. 지휘자가 없는 라이몬은 너무나도 미숙했다. 그러나 미숙한 자에게는 성장의 가능성 또한 열려있는 법. 이제껏 그래왔듯이, 혁명의 바람은 태풍처럼 불어났다. 그 바람은, 불꽃을 품고.

 

아.

두 명의 선수가 완벽하게 호흡을 같이 해야만 성공할 수 있는 기술. 그 찬란한 두 갈래의 불꽃을 보고, 깨달았다. 파이어 토네이도 더블 드라이브. 네가, 필요했던 이유를.

불꽃은 두 개의 도화선導火線을 타고 맹렬히 타올라 하나의 거대한 화염이 된다. 내가 전해준 이 불꽃은, 네가 일으킨 이 바람을 타고. 너와 내가 완벽하게 호흡을 같이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 혁명.

따스함을 품은 빛과 어둠을 품은 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는 너를 느끼고, 닿을 수 없는 곳에서 너는 나를 끌어안았다. 축구는 나를 구원해 준 은인이었고, 너는 나의 축구를 이끌어 준 별이었구나. 태양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별빛이 이끄는 여명으로 인도해 준 빛이여. 네가 없었다면 시작되지 않았을 이 강하고 담대한 혁명에, 나는 또 한 번 구원받았다.

 

내가 좀 늦었지?

이럴 때는 다녀왔어라고 하는 거야.

 

다녀왔다는 인사를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랐고, 너에게 돌아왔고, 한참 동안 울어왔을 너를 안아주었다. 한참 동안, 너를 안아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