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고엔지 슈야가 드디어 돌아왔다. 에일리아 학교의 추종자에게 여동생 고엔지 유카를 인질로 잡혀 팀을 나갈 수밖에 없었던 그가 슈퍼 엡실론 전에서 화려하게 부활한 것이다. 가히 최고라 단언할 수 있는 라이몬일레븐은 여전히 왁자지껄했고, 그가 없는 사이 새롭게 힘이 되어준 이들도 있었으며, 그럼에도 언제나 하나였던 것처럼 그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넓은 바다에서 인연을 만나 기쁘다며 친근하게 어깨동무를 해오는 쓰나미 죠스케, 장난기가 넘치는 얼굴을 굳이 숨기지 않는 코구레 유야. 축구공을 주고받으며 대화한 타치무카이나 우라베, 그리고 후부키까지. 자신이 팀을 떠난 사이에도 이렇게나 많은 동료가 더해져 지금의 라이몬을 만들어 주었다고 고엔지 슈야는 확신했으며 동시에 그들에게 감사했다.
엔도를 비롯한 원래 라이몬 팀원들과도 재회의 감동을 나누고 떠들썩한 분위기 속에서 모두 다 같이 저녁 장을 보러 나간 사이, 이벤트의 메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고엔지는 잠시 양해를 구하고 혼자 들른 곳이 있었다.
오키나와 츄라우미 수족관.
축구부원들이 들르는 마트 근처에서 마침 조용하고 한적한 곳이 필요했던 고엔지의 눈에 들어온 것은 커다란 수족관이었다. 규모는 컸으나 지금은 관광 비수기이다 보니 그렇게 사람으로 붐비지는 않았다. 뜬금없이 웬 수족관. 바다 근처에서 얼마간 지내다 보니 해양생물이 보고파졌나, 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그저 이 순간, 고엔지 슈야가 감사 인사를 전해야 할 또 한 명의 사람이 생각났을 뿐이다.
대기 인원이 그리 많지 않아 표를 끊기 위해 줄을 서고 얼마 안 있어 금방 입장할 수 있었다. 어두운 조명에 안락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남청색 물빛. 거대한 수족관과 신비로운 바다생물의 경이로움에 압도되어 멍해진 것도 잠시, 희게 빛나는 산호를 보고서야 고엔지는 다시 자신이 이곳에 들른 이유를 떠올릴 수 있었다. 함께 오지 않은 축구부원들 또한 장을 보는 데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 용건만 간단히 하고 그들에게 돌아가야 했다.
뚜르르. 무미건조한 연결음을 몇 초 듣고 있다 보면.
“여보세요?”
“여보세요? 나야, 히카리.”
“응? 누구......”
오빠야?
아. 이 전화번호가 오니가와라 형사에게 받은 히카리의 것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히카리에게는 자기 번호가 없을 것이라는 사실도.
나도, 나도 바꿔줘. 언니!
너머에서 사랑스러운 유카의 목소리가 자신을 보채는 소리가 들린다.
“아, 슈야구나. 유카 바꿔줄게. 잠시만.”
보지 않아도 두 손을 뻗고 폴짝폴짝 발돋움하는 여동생의 모습이 눈앞에 있는 듯하다. 달가닥. 휴대전화가 옮겨가는 소리.
“오빠! 나 지금 히카리 언니네 집이야!”
“유카, 언니 말 잘 듣고 있어? 떼쓰거나 하면 안 돼.”
“걱정하지 마! 언니가 유카 귀엽다고 소꿉놀이도 같이 해주고 아이스크림도 먹게 해 줬어. 맞지, 언니?”
맞아. 유카도 오빠보다 언니랑 노는 게 더 재밌다고 했어. 맞지, 유카?
...... 비밀이야!
유카와 맞춘 듯한 장난스러운 말투로 던진 히카리의 말. 분명 악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확실한 대답도 하지 않고 휴대전화를 맡기고 가버리는 여동생이 던진 대답에 오빠 개구리가 잘못 맞은 듯했다. 사랑하는 동생이 무사하다는 사실에는 무엇보다 안심이 되었지만...... 뭐, 그걸로 되었나.
“너는 어때? 보다시피 유카는 잘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이쪽도 급한 불은 껐어. 네 덕분이야, 히카리.”
“내 덕분은 무슨...... 도움이 됐다니 다행이야.”
“아니야, 정말 고마워. 네가 유카를 맡아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분명...... 지금의 이 온기를 느낄 수 없었을 거야. 다시 한번, 고마워.”
유리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을 가득 채우는 물소리. 포근한 웅웅거림. 나른하게 온몸을 감싸는 편안함. 이것은 고엔지 슈야가 라이몬일레븐으로 돌아와서야 느낄 수 있는 안정감과도 닮아있었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세이나 히카리가 있었기에 이 모든 것이 고엔지 슈야를 에워싸는 것이 가능했다.
고엔지 슈야를 휘감은 깊은 밤, 그 밤을 가득 채운 빛나는 별. 지구를 향해 꽂혀 오는 수많은 광년의 별처럼, 그를 향해 날아드는 한 줄기 빛.
“...... 감사 인사는 나중에 직접 만나서 들려줘. 나도, 너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으니까.”
잠시 의아함을 품는 고엔지였지만 깊이 생각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넘겨야 했다. 약속한 두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 자신의 시끌벅적한 팀원들이 출구 쪽에서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걸음을 재촉해 넓은 수족관을 나가자마자 들려오는 말은 그에게는 조금 낯간지러운 소리였다.
뭐야, 여자친구라도 생긴 거야? 너무 오래 걸리는데?
리카! 고엔지가 당황하잖아!
우라베와 자이젠의 티키타카에 참을 수 없다는 듯 와르르 터지는 웃음소리와 그 소란 속에서 급히 히카리에게 끊는다 인사하고 그들에게 녹아드는 일상. 이 또한, 모두가 기다려 주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고엔지 슈야는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세이나 히카리가 그들의 마지막 대화를 휴대전화 너머로 들었는지, 아닌지는 그조차도 알 수 없었다.
고엔지 슈야가 라이몬으로 돌아간 뒤에는 많은 일이 폭풍처럼 지나갔다. 오키나와에서 출발하여 도쿄에 도착하자마자 다이아몬드 더스트와 시합하고 또 며칠간의 훈련 후 카오스전을 치렀다. 물론, 고엔지가 복귀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여동생을 다시 위험에 빠뜨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그 기간에 그가 유카를 보러-그리고 히카리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러-갈 수는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에일리아 학원의 마지막 팀인 더 제네시스, 숨겨져 있던 흑막 다크 엠페러즈와의 모든 시합을 마치고 에일리아석이 파괴되면서 사건은 종막을 맞이했다. 히카리네 집에 묶인 발이었던 유카도 고엔지가家로 돌아갔고, 전국에서 힘이 되어준 친구들도 다시 각자의 고향으로 돌아가 지내면서 라이몬중학교의 축구부원들 또한 하루하루 축구를 즐기는 일상을 되찾았다.
여느 날 중에는 고엔지가 히카리를 데리고 라이몬 부원들에게 통성명을 시켜주는 날도 있었고, 그들의 훈련을 지켜보며 히카리와 매니저들이 대화의 싹을 틔우는 날도 있었다. 서로의 번호를 교환하고, 문자를 보내고. 또 시답잖은 내용의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깔깔거리던, 평범한 중학생들의 어느 날.
예외 없이 엔도에게 ‘가장 좋아하는 곳’을 소개받은 히카리도 그곳이 마음에 들었는지 철탑으로 향하는 일이 잦았고, 그곳에서 라이몬 나츠미를 만난 것은 우연이었다. 노을이 지는 시각이었던 것과, 각자의 가슴 속에도 붉은빛의 누군가가 있다는 걸 알아차린 것 또한, 완전한 우연이었다.
“돌아오면 직접 전해주려고 했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너무 많은 일들이 지나가서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어. 아마 슈야는 이미 그 일을 잊었을걸?”
“...... 전하려고 했던 말이 뭔데?”
나츠미가 바라본 히카리의 눈동자 속에는 수족관 따위와 비교할 바가 되지 않는, 깊은 바다가 담겨있었다.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
“히카리가, 고엔지군에게......?”
“응.”
감사 인사는 백번 생각해도 고엔지 슈야가 세이나 히카리에게 해야 할 말이었다. 세이나 히카리가 고엔지 슈야에게 할 말은 기껏해야, 그 인사를 사양하는 정도일까. 그 속에 품은 나츠미의 의문을 알아챈 듯,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가는 히카리였다.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게, 그렇게 기쁜 일이 될 줄 몰랐어. 내가 슈야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게, 그 애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게, 너무 기뻤어. 세상에 그런 느낌은 처음이었다니까?”
“......”
“그래서 난 더, 조금 더 해주고 싶어. 슈야를 위해서, 그리고 나를 위해서. 이 말을 언제 또 전해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때까지도 이 마음은 변하지 않을 거야.”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는거야?”
“...... 행복하니까. 슈야는 의외로 둔해서 나를 아주, 아주 오래 기다리게 할 것 같지만...... 그래도. 그래도 좋으니까. 기다려 줄 수 있어.”
세이나 히카리의 두 눈이 담고 있는 깊은 바다는 첫사랑이라는 이름의 붉은 노을로 찰랑였고, 그것을 바라보는 라이몬 나츠미의 두 뺨은 철탑 광장으로 뻗치는 태양 빛으로 발갛게 물들어 있었다.
“그러니까, 그때까지는 슈야한테 비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