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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이란,고세이 2023. 6. 7. 00:52
더보기 내가 작은 편은 아닌데 말이야, 슈야가 큰 편인 것도 맞는데... 우리 둘이 같이 있으니까 내가 너무 작아 보여! 햇볕이 따사롭게 거실 바닥을 비추던 어느 날, 함께 카펫 위에 앉아 가만히 빨래를 개던 히카리가 뜬금없는 소리를 했다. 고엔지의 티셔츠를 한 장, 자기 티셔츠를 한 장 접어개더니 다짜고짜 내뱉은 말이다. 그 행간을 알아챈 고엔지가 연인의 사랑스러움에 피식 미소를 지었다. 작아 보이는 게 싫어? 싫다기보다는...... 딱히 불만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는 않더니, 대답을 끝맺지 못하고 끙끙거리던 히카리가 또다시 갑작스러운 말을 꺼냈다. 자신의 오른손을 들이밀며. 슈야, 손! 개가 된 것 같은 기분이 잠시 들었지만, 순순히 손바닥을 맞대고 연인이 원하는 대로 해주는 고엔지 슈야다. 또 한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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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울 정도로.고세이 2023. 6. 6. 22:33
더보기 히카리는 고엔지가 얼마나 다정한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 상냥하다는 표현을 쓸 정도로 눈에 띄는 행동들은 아니지만, 정이 많다고 하기에는 충분한 일상을 히카리에게 보여주고, 느끼게 해주었다. 예를 들면, 둘이 같이 외식을 갔을 때. 그가 문을 열고 히카리를 먼저 안으로 들여보낸다. 그리고 마주 앉은 테이블 위에 히카리가 보는 방향으로 메뉴판을 먼저 내밀고, 주문 후 냅킨과 식기를 놓아준다. 매너가 좋다고 하기에는 그 속에서 드러나는 애정이라는 것에, 히카리도 받은 그것을 돌려주려 끊임없는 감사의 인사를 건네는 것을 잊지 않는다. 하나하나 고맙다는 답을 받는 그의 행동에, 고엔지도 익숙해졌을지언정 소홀해지는 일은 없다. 매너라는 것으로 포장되지 않는 그의 애정은 바로 이런 행동이다. 음식이 나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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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항상 그렇게 늦더라!고세이 2023. 6. 4. 23:42
더보기 슈야, 늦겠어! 빨리빨리! 웬일로 재촉하는 쪽이 히카리 쪽인 오늘은 친구인 키요시 소라의 결혼식 날이다. 중학생 때부터 알아 왔던 절친한 친구인 만큼, 일찍 가서 축하해주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고엔지는 한숨 섞인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히카리, 아직 시작 세 시간 전이야. 가는 데는 삼십 분도 안 걸리고. 그래도, 차 밀려서 늦으면 어떡해! 키도군 결혼식이기도 하잖아. 유명한 사람들 많이 올 거 아냐! 고엔지의 변명 같은 답을 듣고서도 히카리는 흥분한 듯 두 뺨에 홍조가 오르며 벽에 걸린 시계를 보기 바빴다. 신부대기실 가서 수다도 떨어야 하고, 사진도 찍어야 하고, 키도군 오랜만에 만나서 인사도 해야 하고, 그리고... 식장에 도착한 후의 할 일을 끊임없이 대기 시작하는 히카리에 고엔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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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속도 모르고고세이 2023. 6. 4. 00:01
https://youtu.be/wu0HYUDKxis 더보기 똑같이 말하고 싶은데 내가 그래도 될까, 좀 더 기다려볼까 히카리가 고등학교 때부터 줄곧 좋아하던 노래가 한 곡 있다. 가만히 듣고 있다 보면 본인도 모르는 새 그 노래를 흥얼거리곤 한 터라 고엔지도 어느새 가사를 익히게 되었고, 히카리의 이끌림으로 노래방에 가게 되면 슈야도 이제 이 노래 알잖아?라며 역시 손에 쥐어진 마이크를 앞에 대고 익숙하지도 않은 노래를 몇 번 부른 적도 있다. 꽤 긴장되고 쑥스러웠던 순간이었지만 히카리의 부탁 아닌 부탁이었으니까. 못 부를 것도 없었다. 부르면 히카리가 손뼉을 치며 좋아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당시의 고엔지에게도 그 곡은 상당히 와닿는 가사였으니까. 히카리도 이 노래를 자주 부르는 만큼 의미가 있는 곡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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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리러 갈게.고세이 2023. 6. 2. 22:21
더보기 누군가와 약속을 잡고 그 사람을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선 적이 있니? 공적이든 사적이든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다들 하는 거니까, 아마 너도 그때의 기분을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알 거야. 타인을 만난다는 것에 대한 설렘과 늦으면 어떡하지 하는 약간의 긴장. 나와 약속한 그 사람을 어떤 이유에서든 오래 기다리게 하고 싶지 않은 건, 약속을 잡아본 사람이라면 똑같은 마음이겠지. 기대라는 것에는 언제나 불안의 감정 또한 조금이나마 섞여 있기 마련이니까. 그런 의미에서는 만나러 가는 사람도, 기다리는 사람도 똑같은 마음 아닐까? 기다리게 하고 싶지 않으니까 자기가 기다리는 거고, 오래 기다리면 자연스럽게 걱정이 되는 거고. 서로를 믿고 나아가는 약속의 길 그 끝에, 서로가 있을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너도 알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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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의 소리고세이 2023. 6. 1. 19:08
더보기 좋아하는 사람은 전화벨 소리만 들어도 그 사람인지 알 수 있대. 그래? 응, 우리 엄마가 그러더라고. 전에 아빠한테 전화 왔을 때, 보지도 않고 아빠인 걸 맞추더라니까? 놀라서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봤는데 엄마가 그런 건 다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거라 그랬어. 신기하지? 그렇네. 대화는 히카리네 부모님이 얼마나 사이가 좋은지, 그 사이에서 히카리는 얼마나 즐거운지-약간의 고충과 함께-하는 흐름으로 넘어갔지만 한 가지, 히카리가 고엔지에게 말하지 않은 사실이 있다. 나도 그런데. 오늘 데이트 약속으로 고엔지에게서 이제 나간다며 조심해서 오라는 연락을 받을 때도 그랬다. 벨소리의 첫 음이 울리고, 진동이 시작된다. 휴대폰으로 가까이 가는 동안의 발걸음이 가볍다. 아, 너구나. 아침에 울리면 상쾌한 모닝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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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을 잊게 하는.고세이 2023. 5. 31. 20:31
더보기 그리움이란 뭘까? 그리움, 그리우다, 그리다. 상대가 너무나도 보고 싶어서,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리듯 그 사람을 계속 생각하는 거야. 그래서, 보고 있어도 그립다는 말이 생기고, 그렇게 계속 그리워만 하다가 상사병도 생기는 거지. 머릿속 그림은 실제로 꺼내 볼 수 없으니까. 보고 싶은 상대를, 보고 싶어 하기만 해야 하니까. 애가 타서, 안달이 나서. 나는 네가 그리워. 가슴에 사무치도록. 내 곁에 있었을 때도, 그러지 못했을 때도. 그리고 지금도. 너를 그려왔어, 계속해서. 처음에는, 그리운 줄도 모르고 널 그려왔어. 내가 널 그리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 채, 자꾸만 떠오르는 네 얼굴을 지울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너를 그리는 줄도 몰랐으니까, 너를 지우지도 못한 거지. 거리를 같이 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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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에는 익숙하니까.고세이 2023. 5. 30. 21:53
더보기 출장? 며칠간은 먼 지방으로 출장을 가 집에서 혼자 지내야 한다는 말에 히카리에게 달린 가상의 꼬리가 축 늘어진 듯 보였다. 두 손바닥을 마주 대고 손가락을 꼼지락대는 걸 보니 따라가고 싶다는 말을 목구멍에서 겨우 삼키고 있는 것 같다. 막무가내인 듯 보여도, 그렇게까지 어리광을 부리지는 않는 히카리이다. 2년 전에 비해서, 말이지... 순간 가슴을 깊게 찌르는 말하지 못할 이유에 작게 헛숨을 들이킨다. 히카리가 고집을 부린다 해서 데려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분명 히카리도 그것을 알고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같이 가고 싶다는 말을 내뱉는 순간, 그러지 못하는 고엔지에게 걱정을 끼칠 걸 알고 있으니까. 정말이지, 자신의 연인은 너무나도 다정하다. 가끔은 독불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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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낸내!고세이 2023. 5. 29. 21:59
추천곡 더보기 나 졸려... 점심시간이 막 지난 시간,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손으로 입가를 가리고 기지개를 켜는 히카리의 눈꼬리에 눈물이 살짝 맺힌다. 어제 영화 보느라고 늦게 잤으니까. 피곤하면 낮잠이라도 좀 잘래? 그런 히카리를 보고는 귀엽다는 듯 작게 웃으며 고엔지가 읽던 잡지를 덮는다. 으음, 낮잠...슈야도 같이 자자. 나 혼자 자면 심심하잖아. 잠을 청하는 데 심심하다는 게 무슨 소리인지... 다른 사람이 들었다면 어리둥절할 말이었지만 고엔지는 이제 알았다. 졸음이 쏟아지는 히카리는 이상한 말을 자주 한다. 그리고 방금 한 말은 딱히 이상한 말이 아니기도 했다. 히카리가 자버리면 혼자 남은 고엔지가 심심할 거라는 소리였으니까. 그럴까? 들어가서 같이 자자. 낮잠을 잘 때는 따스한 햇볕이 몸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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