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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옮기는 약고세이 2023. 6. 26. 22:12
뜨끈한 열감의 이마와 그걸 증명하듯 발갛게 달아오른 두 뺨, 평소에 비해 거칠어진 호흡에 섞여나오는 잔기침. 고엔지 슈야가 드물게 열감기에 골골대는 모습이었다. 아침을 맞이하는 히카리를 깨우지 않아 이상하게 여기며 눈을 뜨니 그 앞에는 땀으로 흥건해진 티셔츠가 보였고 습하게 무게를 실어 오는 팔이 자기 전 자세 그대로 히카리를 껴안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아픈 상태의 사람인 걸 안 히카리는 더 이상 비몽사몽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그 순간 번쩍 정신이 듦과 동시에 몸은 의식할 새도 없이 일어나 고엔지의 자세를 정리해 눕히고 이불을 턱밑까지 끌어올려 덮어준다. 다른 때 같았으면 이 시기에 몸살감기를 앓는 건 히카리였는데, 이번엔 그 반대인 이유가 짐작이 갔다. 미안하게... 울상 가득한 히카리의 머릿속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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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메이지 않고고세이 2023. 6. 25. 20:14
지구에서 보는 별들은, 몇 광년이나 전의 빛을 내뿜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몇 광년이나 전부터 저 별들은, 지구라는 골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것이다. 밤하늘을 이불 삼아 캐러밴 위에 드러누워 엔도와 그런 이야기를 한 적도 있었다. 오늘은 몇 년만에 유성우가 내리는 날. 하천가 공터에 자리를 잡고 누워 연인의 팔을 베개 삼아 조잘거리던 히카리의 머릿속에 문득, 중학 시절의 어떤 추억이 떠올랐다. 외계인이 쳐들어왔네, 지구를 정복할 것이네 하며 시끄러웠던 나날들. 그 이후로도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축구 프런티어 인터내셔널을 맞이해 전국적인 축구붐을 일으키기도 했고, 그 때문에 이별의 아픔을 맛보아야 하기도 했으며, 평화로운 나날이 지속되나 싶더니 시간여행도 다니고, 우주 축구대회까지. 정말, 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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蘇고세이 2023. 6. 25. 06:16
알고 있었다. 고엔지 슈야는 세이나 히카리의 믿음을 알고 있었다. 고엔지 슈야의 선택에 대한 믿음, 그가 자신의 곁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언제까지라도 기다릴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그것은 확신이 아닌 인지였다.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한 인정. 그 후의 괴로움은 차치하고서라도, 고엔지 슈야의 부재가 세이나 히카리에게는 고작 그러한 정도에 그쳤다. 인정하고 있었기에, 그의 귀착은 너무도 당연하였기에, 세이나 히카리의 일상은 평온했다. 적어도, 그렇게 보였다. 그러나, 단 한 사람에게만은 그 안온함이 의심으로 다가왔다. 불안이라 명명하기에는 그 또한 사랑하는 이의 평안을 바랐으나, 평안이라 이름 붙이기에는 그의 심중이 그렇지 못하여, 의심이라 하였다. 용서를 바랄 자격이 없음에도 기다림을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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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는 자연스럽게.고세이 2023. 6. 23. 21:39
이상하다. 뭔가 이상하다. 고엔지 슈야는 최근 자신의 감정 상태에 묘한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온종일 그런 것은 아니고 딱 정해진 때가 있는데, 이를테면 바로 지금 같은 상황. 복도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세이나 히카리. 그리고 히카리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장난을 주고받으며 같이 걸어오는 한 남학생. 분명 히카리와 같은 반이었을 것이다. 하굣길에 히카리를 데리러 교실에 들렀다가 몇 번 본 적이 있는 얼굴이다. 그리고 또다. 고엔지 슈야는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했다. 분노? 짜증? 아니다, 조금 더 복잡하고... 어, 슈야? 그 말에 눈을 마주치기 전에 휙 몸을 돌렸다. 그 목소리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듯이, 잘못한 것도 없는데 코너를 돌아 그대로 교실로 도망치듯 돌아갔다. 심장이 쿵쿵,하고 소리가 들릴 듯 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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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이어폰이 없어도고세이 2023. 6. 22. 21:02
히카리, 그거 무슨 노래야? 히카리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면 고엔지가 제목을 묻는다. 그런 뒤 두 사람이 같이 차에 타는 날이면 차 안에는 그 노래의 원본이 흘러나온다. 그렇게 빨간 스포츠카에 풍성한 음악 소리를 추가하게 된 것도 벌써 오랜 일. 차에 탄 히카리가 기분이 좋아지는 건 당연지사였다. 오디오에서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조수석에서는 똑같은 멜로디의 허밍이 들린다. 살포시 눈을 감은 채 드라이브를 즐기는 히카리를 보면 자연스레 음악을 하나하나 찾아 넣어둔 보람이 생긴다. 유행에 민감한 편은 아닌 것 같은데, 히카리는 언제 어디서 그렇게 최신곡을 알아 오는지 정말 신기할 따름이다. 이렇게 히카리만을 위한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가다 보면, 그 음악취향도 알게 되는 법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특별히 가리는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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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고세이 2023. 6. 21. 22:20
히카리는 SNS를 자주 하는 편은 아니지만, 심심풀이용으로 SNS를 이용하기는 했다. 그중에 가장 시간이 잘 가는 건 역시, 유명 인사인 연인에 대해 알아보는 것. 사람들은 자신의 연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일종의 색안경을 빼고 본 고엔지 슈야는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인터넷 서핑을 하다 보면 금방 그 속에 빠져들곤 했다. SNS에는 그의 능력에 대한 각종 분석과 여러 계약 관계, 그리고 존재 외에는 아무것도 알려지지 않은 세이나 히카리에 대한 글까지 적혀있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고엔지 슈야의 서치방지명, 그러니까 본인을 지칭하는 검색어가 바로 수면위로 드러나지 않도록 하는, 일종의 별명까지 적혀있었는데 히카리는 그의 그 별명을 보자마자 너무나도 마음에 들어 나중에 연인을 놀려먹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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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엔지 슈야로서고세이 2023. 6. 20. 22:40
더보기 세이나 히카리에게. 네가 이 편지를 보고 있을 때쯤에는 나는 이미 네 곁을 떠난 후겠지. 미안해, 말도 없이 갑자기 사라져서. 지키고 싶은 것을 위해서는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어. 하지만 기억해줘. 내가 지키고 싶은 것에는, 너도 포함된다는 것을. 이 길은 모두를 지키는 방법이야. 내가 희생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 그저, 내가 해야 할 일이라서 하는 것뿐이야. 그게 설령 많은 사람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길이라 해도, 네가 듣는다면 속상해할 방법이라 해도. 나는 이 길을 나아가야만 해. 나를 이해해줄 너인 걸 알아서, 이기적인 나로 행동하게 될 걸 알아서. 그래서 더욱 미안해. 왜일까, 너에게는 보다 더 어리광을 부리게 되는 것 같아. 나의 이 의미 없는 기댐을, 행복한 투정으로 만들어준 게 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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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상고세이 2023. 6. 19. 21:19
나는 말이지, 잘 모르겠어. 네가 어디 있는지. 내 마음은 항상 널 따라다니는데, 내 마음이 어디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어. 어떤 때는 네가 멋지게 보여. 널 바라보면 이상하게도 다가갈 수 없을 정도로 우러러보는 마음이 생겨서, 나는 널 동경하나 봐 싶다가도 또 어떤 때는 네가 한없이 위태로워 보여, 나는 널 지탱해주고픈 가봐 싶기도 해.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네 모습에 너를 비춰보면 그 존재감에 압도되는 기분이 들어 너에게 의지하고 싶은 날이 있는가 하면, 나만의 너를 바라볼 때는 너무나 안쓰러운 그 모습에 나에게 기대게 하고픈 날이 더 많은 것 같아. 슈야, 넌 어때? 필드를 가로질러 골망을 뒤흔드는 존경스러운 너도, 책임을 느끼고 물러나야 할 때를 아는 위태로운 너도. 존재만으로도 주위를 이끌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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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아들이다고세이 2023. 6. 18. 22:08
거절과 거부의 차이는 뭘까? 갑자기 왜? 거부감이라는 단어는 있지만, 거절감이라는 단어는 안 쓰잖아? 뜻만 놓고 보면 비슷한 단어인데. 그러게. 히카리는 어떻게 생각하는데? 이건 내 개인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말이야. 거부감이라고 하면, 본능에서부터 싫다는 느낌이 강하잖아? 음, 그렇지. 거절은...아, 내가 슈야의 부탁을 거절하는 일은 있어도, 슈야 자체를 거부하는 일은 없는 것처럼. 그런 문제인 거야...? 그런 문제인 거야! 원래 언어는 느낌이라고 했어. 그 말은 그런 뜻이 아닌 것 같은데... 뭐라고? 아, 아냐. 얼핏 들어도 만담 같은 둘의 대화는 언어학과가 아닌 이상 별 영양가가 없어 보였다. 한끗 차이인 단어의 뜻에 무슨 차이가 있을까, 고집스레 생각에 빠져 멋대로 결론을 내린 히카리와 그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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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만큼이나.고세이 2023. 6. 18. 21:38
관중석 속 경기를 보던 한 사람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주위의 서너명은 그쪽으로 시선이 몰릴 정도로. 움직였다는 것 자체보다는 그라운드에서 뛰고 있던 선수의 '이름'을 친근한 듯 외치며 일어선 것이 쏠린 시선의 이유였을지도 모르겠다. 그 이름의 주인이 태클에 걸려 발목을 부여잡고 일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부상인가 싶은 해설에 이어 관객들까지 술렁거릴 때. 아니, 어쩌면 태클이 걸린 그 순간부터. 넘어지는 그 자세가 평소와 같지 않았기에, 응원으로 넘겼을 일이 걱정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눈에 띄던 그 관객 중 한 명이 다음 행동을 취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인파 속을 비집고, 헤치며 나아가 출구 쪽으로 향한다. 계단을 내려가고, 또 내려가고. 엘리베이터를 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