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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예상이 가는 바일지도 모르겠지만, 히카리는 여행을 좋아한다. 가까운 국내 타지부터 먼 해외까지. 현지의 음식을 먹어보거나 길거리의 풍경을 감상하는 것. 그리고 사랑하는 이와 함께한 시간을 사진으로 남기는 것. 여행하면 빼놓을 수 없는 기념품 쇼핑과 돌아오는 길에서부터 그리워지는 여정을 추억하는 것까지. 모두 히카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이다. 그래서 히카리의 사랑하는 이 또한 함께 여행을 떠나는 것이 연례행사처럼 되어버렸다. 히카리가 구겨 앉으면 몸이 다 가려질 만큼 커다란 캐리어 하나에 두 사람의 며칠분 옷가지를 기대와 함께 한가득 채워 넣는다. 히카리가 정한 이번 여행지는 유명 소설의 배경이 된 이탈리아 피렌체. 두 사람은 피렌체의 두오모로 향한다.
비행기를 타고 장장 몇시간을 앉아있는 것은 아무리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원체 활동적인 히카리도 그럴까, 싶은 주변 사람들의 생각과 다르게, 히카리는 의외로 비행기 안에서 잘 버티는 편이다. 버틴다는 표현보다는 곁의 연인을 말동무 삼아 여행에 대한 설렘으로 시간을 보낸다고 하는 편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지치지도 않는지 쉴 새 없이 꼼지락거리며 주전부리를 집어 먹고, 먹여주고, 말을 걸어온다. 그러다가 고엔지가 피곤한 기색을 보이기도 전에 자신은 좀 자둬야겠다며 작게 하품하고는 이내 잠이 들어 두세시간 눈을 붙인다. 프로 선수로 활동할 당시의 고엔지는 장시간 비행기 탑승의 경험도 많으니 웬만한 사람들보다는 좀 낫다고 하지만, 히카리가 아무리 활발하고 체력이 좋다고 해도 그런 고엔지에게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자기 쪽으로 몸을 구부정하게 하고 담요를 덮은 채 오르락내리락 하는 어깨와 꾸벅꾸벅 조는 듯 불편해보이는 머리를 조심히 감싸 어깨에 기대도록 살짝 옮겨준다. 그제야 좀 편한 듯 표정이 풀어지는 히카리가 사랑스럽기 그지없이 보이는 그이다.
누군가를 가장 사랑하는지 알고 싶으면 멀리 여행을 떠나라는 말이 있다. 그곳에서 내 옆에 있었으면 하고 생각나는 사람이 바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
갑자기 떠오른 어느 소설의 한 구절에, 그는 자신의 옆에서 곤히 잠들어있는 한 사람이 더없이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꼈다.
비행기의 창 너머로 보이는 가슴 시리도록 푸르고 아름다운 푸른빛에, 그는 이 여행을 함께하는 그 사람을 가장 사랑하는 자신임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먼 여행. 다음 여행, 이번 여생. 고엔지 슈야의 옆에 있어 줄 그 사람에. 사랑을 사랑했다.* 에쿠니 가오리 & 츠지 히토나리 < 냉정과 열정 사이 >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