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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 속에서조차 열심히 사랑할 필요가 있을까요?고세이 2023. 5. 6. 17:17더보기
그러고 보니 슈야가 우산을 가져갔던가?
드물게 고엔지가 늦잠을 자버린 오늘 아침, 급하게 챙기느라 일기예보를 확인도 못하고 나가버린 일이 떠올랐다. 오늘은 왜 늦었지, 어제는 왜 늦게 잤더라, 그 보드게임 정말 재밌었는데. 꼬리에 꼬리를 물고 시간을 거꾸로 달리는 자신의 기억 속에서 퍼뜩 정신을 차린 히카리가 티비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다시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여름날씨로 접어드는 요즘인데요, 오늘 오후부터 밤까지 늦은 봄비 소식이 있겠습니다. 특히 퇴근시간, 도쿄를 중심으로 5mm 정도의 비가 내릴 예정이니 우산 챙겨나가시길 바랍니다... 기상캐스터의 충고가 무색하게도 현관에는 보란 듯이 고엔지가 두고 간 남색 장우산이 놓여있었다.
꺼내놓은 걸 보니 어제 미리 확인은 한 것 같은데, 역시 늦게까지 게임한 게 문제였나? -틀림없다. 어울려달라 한 쪽은 물론 히카리다. 직접 말은 하지 않았지만, 고엔지가 거절을 할 수 없었다는 것도 뻔한 사실이다. 이러한 배경을 알고 있음에도 히카리의 입에서 나온 말은- 어쩔 수 없지 정말, 슈야도 못말린다니까 참. 내가 데리러 가야겠다. 여담이지만, 고엔지의 퇴근시간에 맞춰 그를 마중 나가는 과정에서 데리러 갈 테니 몇 시에 어디서 보자느니 하는 연락은 따로 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약속이라도 한 듯, 같은 장소에서 딱 마주친 두 사람 사이에 왜 우산을 하나만 가져왔냐는 내용의 대화 또한 나눌 필요가 없었다.
한 우산 아래 두 사람이 들어가 비를 피하는 일이, 미디어 속에서는 왜 이리 낭만적으로 과장되어 나오는 걸까. '과장'이라고는 했지만, 그것도 베이스가 되는 로맨틱한 요소가 있어야 성립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과장된 미디어 속 내용보다 더하다고 볼 수 있는 장면 속 주인공이 지금, 세이나 히카리와 그의 연인이다. 이 정도면 정말 포장이 아닐까, 싶은 정도-로맨스라는 것으로 다 말할 수 없는 무언가의 장르가 되었다는 소리다-로 빗속에서 둘만의 영화를 찍고 있는 그들은, 남들이 어떻게 바라보든지 정말 우산 속이 '둘만의' 세상이 된 것 같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첨언하자면, 이 글의 내용을 그대로 대화의 주제 삼아 우리 꼭 영화 속 주인공 같아~ 라던가 그러니까, 내가 그만큼 슈야를 사랑하는 거라니까? 따위의 대사를 조잘조잘 말하는 쪽은 세이나 히카리였고, 그런 자신의 연인을 사랑스럽다 못해 그런 기분을 꾹 참고 미소로 일관하며 우산을 들고 히카리 쪽으로 기울여주는 쪽은 고엔지 슈야였다.
당연한 일이지만, 영화가 아니다. 대사도, 행동지문에 적힌 대로 연기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또한 당연한 일이지만, 이러한 로맨틱한 일상이 두 사람에게는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오히려 그렇지 않으면 어색할 정도로. 지난 2년의 이별을 메꾸기라도 하려는 듯, 혹은 이 순간의 진심이 우러나온 행동인 듯, 두 사람은 사랑에 필사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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