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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적하게 흐르는 침묵에 몸이 찢어질 듯 떨렸다.
믿고싶지 않았으나 믿어야만 하는 고요함이었다. 이 묵음의 발원은 염성화, 너였기 때문에.
불과 몇시간 전까지만 해도 단란한 소음이 우리의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등을 맞대고 앉아 책장을 넘기는 소리, 창밖에서 햇살과 함께 스며드는 새소리, 이따금씩 들려오던 차를 홀짝이는 소리. 조용하지만 어색하지 않았던 그 시간 속 침묵을, 너는 듣고 있었니? 아니. 금샛별. 너는 그의 소리를, 듣고 있었니? 책장소리 속 그의 초조함을, 새소리 속 그의 탄식을, 그 모든 시간 속 그의 간절함을. 너는 듣고 있었니?
이제 그만하자.
응? 졸려? 같이 잘까?
낮잠을 자기엔 어중간한 시간이었다. 그 전에, 그가 먼저 이렇게 단정지어 '그만하자'고 말할리가 없다. 눈치챘음에도 한번 더 묻게 된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이미 눈치챈 것 처럼, 그럴리가 없는 그가 이미 그렇게 말해버린 것처럼, 거기서 그만둬야했다. 우리, 그만하자. 끈적하게 흐르는 침묵에 몸이 찢어질 듯 떨렸다. 믿고싶지 않았으나 믿어야만 하는 고요함이었다. 이 묵음의 발원은 염성화, 너였기 때문에.
샛별은 별이 되지 못했다. 태양의 눈부심에 빛을 잃어버리고 그 주변을 맴돌기만 했다. 맴돌고, 맴돌고, 또 빙빙 돌기만 했다. 그렇게 태양 주위를 맴돌기만 한 샛별은, 바람을 만들었다. 바람의 시작이 되었다. 그것은 산들바람에서 흔들바람이 되고, 센바람, 큰센바람, 폭풍이 되었다. 폭풍의 눈은 고요하다던가. 폭풍의 눈은, 정말 고요했다. 그곳에서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단지 지켜보는 것만으로는 무엇도 변화시킬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바람을 함께 지켜보는 이들이 늘어나고, 신성한 길 위로 불어오는 고요한 바람은 점점 커졌다.
천둥을 몰고온 산들바람이 그 길 끝에 다다랐을 때, 그곳을 가득 채웠던 함성은 침묵이 되고, 바람은 더이상 나아갈 필요가 없었다. 폭풍이 사라진 눈은 드러나고, 반짝이던 샛별은 타오르는 별이 되었다.
다녀왔어.
날뛰는 침묵은 별의 탄생을 알리는 소리였다.
간절히 원해왔던 고요함이었다. 이 묵음의 이유는 염성화, 너였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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